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한국과 호주 운명의 갈림길

한국으로 아내·아들과 함께 온 카렌 난민 가족은 난민 인정 법정 싸움
호주로 간 난민은 정부 지원받아 사회학 공부
등록 2014-04-19 15:27 수정 2020-05-03 04:27
버마 군인들로부터 카렌반군(KNU)과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체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상황은 엄혹했다. 2009년 10월 KNU 초소에서 반군 병사들이 출입국 업무를 보고 있다.이유경

버마 군인들로부터 카렌반군(KNU)과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체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상황은 엄혹했다. 2009년 10월 KNU 초소에서 반군 병사들이 출입국 업무를 보고 있다.이유경

세 식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다행히 아들 레인보우(가명)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데, 제대로 등록은 했는지, 언제까지 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부 모두 법적으로 한국에서는 일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지도 걱정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레인보우를 낳았으니 한국에 온 지도 8년이나 되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강제퇴거 당한 적이 있는 남편

레인보우의 엄마와 아빠를 처음 만난 건 2011년이지만, 이들과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친구의 소개로 타이에서 버마(미얀마)의 소수민족 문제를 다루는 단체에서 잠시 자원활동을 했다. ‘버마’ 하면 가장 먼저 군부독재와 아웅산 수치가 생각나겠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소수민족 문제가 중요한 인권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타이 치앙마이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그 단체는 버마에서 카친·카렌·아라칸·친 등의 소수민족 청년들을 초대해,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인권 교육을 하거나 인권 실태를 조사할 수 있도록 조직하고 교육하는 활동을 했다. 교육에 참가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불법체류자였는데, 약 2개월 동안 사무실에 딸린 가건물에서 합숙하며 공부를 했다.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과 억압, 가난, 무력 분쟁과 같이 그들이 전해준 이야기는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들을 따라 타이와 버마의 접경지역에 가서 타이로 빠져나온 카렌 난민들을 만났다. 난민들은 왜 고향을 떠나 정글로, 그리고 남의 나라로 도망 와서 불편한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민족 사이의 갈등이 영국의 식민지 분할통치 정책에서 비롯됐다지만, 버마 군부 역시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 갈등을 이용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과거의 부정의가 현재의 부정의와 만나 사람들의 삶과 꿈을 빼앗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몇 년 동안은 카렌 난민촌을 방문해 뜻을 함께하는 지인들이 모아준 학용품과 책을 전달했고, 난민촌에서 만난 카렌 친구를 한국에 초대하기도 했다. 카렌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카렌 사람들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타이 난민촌에서 온 카렌 친구로부터 버마 정글로 흩어진 버마 내의 난민과 타이 난민촌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조금씩 돈을 모아 난민들에게 전달했다. 이 부부도 모임에 가입해 난민 지원 활동을 했다. 2009년 초 버마 군인들이 카렌 난민들의 마을을 공격해 난민들이 다시 피란길을 떠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부부는 버마 대사관 앞에서 카렌의 평화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집회를 열었다.

이 부부는 2006년 10월 한국에 입국해 바로 난민 신청을 했는데,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의 절차를 통해 3년 만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그사이 레인보우가 태어났고, 레인보우도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난민 인정 결정을 받은 지 1년이 지나, 출입국관리소로부터 다시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이 몇 년 전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체류 기간이 지나서 강제퇴거를 당했는데, 난민 심사를 받을 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가명으로 난민 신청을 했기 때문이란다. 3년 동안 초조하게 기다렸던 평온한 삶을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이 땅에 발붙이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남편은 카친족이고, 아내는 카렌족이다.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카렌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남편은 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일했는데, 체류 기간이 지나서 강제출국을 당했다. 남편은 학창 시절에 사귀던 아내를 찾아가서 결혼하고, 아내의 고향에서 함께 장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부부가 카렌반군(KNU·카렌민족연합)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버마 정부군이 마을에 들어온 KNU 정보국 소속 3명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 부부의 가게에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KNU는 1947년에 결성된 카렌 민족의 최대 조직으로, 카렌 민족의 해방을 주장하면서 1949년부터 버마 중앙정부와 내전을 하고 있다. KNU는 자치를 주장하면서 그 산하에 외무부·교육부 등을 두고 별도의 군사조직까지 갖추었다. 언론에 의하면 2012년 1월 KNU와 정부가 평화협상을 체결했다고는 하지만, 이후에도 버마 법원은 KNU의 고위급 지도자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아직도 많은 양심수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내를 위해 선택한 한국행

내전을 옆에서 지켜본 이 부부는 버마 군인들로부터 KNU와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아내의 경우 작은오빠가 KNU 산하의 군에 입대했는데, 이로 인해 아버지와 큰오빠가 수시로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 공포를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이들처럼 더 깊숙한 정글로 도망가거나, 강 하나를 건너 타이로 도망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남편이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곳보다 나을 거라 생각하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남편은 이전에 강제출국을 당한 일 때문에 고민이 많았으나,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만을 믿고 따라온 아내를 위해 한국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가명으로 한국에 들어왔고, 이들은 한국에 오자마자 난민 신청을 했다.

난민 심사 과정에서 남편은 굳이 강제출국 당한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출입국관리소도 그것에 대해 특별히 묻지 않았다. 법무부는 처음에 이들의 신청을 거절했다가 나중에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난민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출입국관리소가 남편이 과거에 강제출국 당한 사실을 확인하고 난민 인정을 취소한 것이다. 법무부는 “난민의 인정을 하게 된 중요한 요소가 거짓된 서류 제출 및 진술, 사실의 은폐 등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난민 인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출입국관리법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남편이 부득이하게 가명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KNU와의 연루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될 경우 생명이나 신체가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난민 인정 요건 가운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가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공포가 있었는지에 따라 난민 여부를 판단해야지, ‘가명’ 사용 여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1심 법원도 이러한 관점에서, 난민 인정을 취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항소심 법원은 강제퇴거 사실을 감춘 것은 출입국관리 사무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중대한 위법이므로 난민 인정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생명 위협 앞에서 가명 사용했는데

난민제도는 출입국관리 사무의 안정성과 어느 정도 부딪힐 수밖에 없다.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해 도망을 나오는 과정에서 부득이 가명을 사용하거나 위조 여권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난민 요건에 해당한다면 난민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난민제도의 취지다. 강제퇴거 사실을 감추었다고 해도 ‘난민’의 요건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난민협약에도, 과거에 강제퇴거를 당한 국가를 난민 신청 국가로 선택할 수 없다는 내용은 없다.

타이에서 만난 카렌 친구는 난민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갔는데, 그곳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버마의 상황이 나아지면 고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배운 것을 펼쳐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부와 레인보우에게는 그저 삶이 평온하고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언제쯤 레인보우 가족도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 수 있을까.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