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겨울올림픽이 폐막했다. 인기 종목이건 비인기 종목이건, 투혼마다 벅찬 감동. 그러나 모든 감동과 투혼을 안드로메다로 직배송하는 하나의 종목과 하나의 선수가 있다. 피겨스케이팅, 여신 김연아. 더 설명해봤자 입만 아픈 전설 그 자체, 김연아에 대한 관심은 다른 종목, 다른 승부, 다른 선수에 대한 관심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한국인이 김연아의 경기를 보는 것은, 그 분투와 승패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천상의 이데아에나 비견할 만한 그녀의 절대적 우월함과 우주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김연아를 본다. 김연아는 이제 1등도 2등도 꼴등도 아니다. 그녀는 매길 수 없는 등수, 그냥 0등이다. 여신이란 말이 함축하듯, 그녀는 앞뒤를 재는 대상이 아니라, 모든 대상에 앞서는 이데아다. 한 광고가 이 철학적이고도 복잡미묘한 결론을 놀라울 정도로 명쾌하게 내려주었다. “김연아는 인간이 아니다. 그녀는 국가다.”
앵글을 바꾸는 두 가지 경우이데아는 보는 게 아니다. 이데아는 중독되는 거다(굳이 예를 들자면 남자들이 술만 마시면 군대 무용담에, 여자들이 지름신만 받으면 명품과 세일에 탐닉하는 것처럼? 어린이는 게임 캐릭터에, 어른들은 리더십에 탐닉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김연아에게 ‘중독’된다. 우리가 보내는 환호는 사실 응원이 아니다. 응원은 인간 선수에게 보내는 거니까. 우리가 여신에게 보내는 환호는 사실 탐미이며 중독이다. 중독은 여러 군데서 나타난다. 점프 장면을 몇 날 며칠 수십 번씩 돌려 보고 다시 보고 또 보고 하는 것 이외에도, 나는 이번에 탐미의 아주 근사한 실례를 드디어 발견했다. 김연아가 강림(?)을 앞두고 있는 새벽이었는데, 한 방송사 앵커가 “저희 방송국은 특별히 별도의 카메라를 구비하여, 타 방송국과는 다른 앵글로 김연아 선수를 보실 수 있도록…”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젠 단지 보고 보고 또 보는 양적 중독이 아니라, 앵글을 다각화하는 질적 중독(실제 한 방송사는 김연아가 대기실에서 요가매트 위에서 몸 풀고 있는 장면을 송출하기도 했다)이 필요한 게다. 사실 영화 촬영도 그렇지 않나. 배우가 멋지고 상황이 알차면, 앵글을 바꾸어 더 찍는다. 한 앵글로만 찍기 얼마나 아까우면. 우린 이데아라면 여러 앵글로 촬영하는 버릇이 있다. 앵글의 다각도는 언제라도 마르지 않을, 가치의 영원성을 증명한다. 할렐루야.
그런데 잠깐. 영화 촬영에서 앵글을 바꾸는 경우가 또 하나 있다. 그건, 반대로, 배우가 후지거나 상황이 재미없을 때다. 내용의 진부함이나 식상함을, 다양한 앵글로 땜빵하는 것인데, 이는 흡사 배우의 액션이 어설프면 여러 각도로 찍어서 후다닥 이어붙이면 그럴듯한 액션으로 둔갑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내용의 빵꾸를, 형식의 풍부함으로 메운다고나 할까. 이 반전이 김연아의 사례에 적용되는 건 아닐까.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여신 김연아에게 탐닉하게 하는 가치의 영원성이란, 가치의 진부함, 말하자면 가치의 궁핍성은 아닐까. 바꿔 말하면, 이제 절대우위 여신에게 얻을 재미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우린 앵글을 바꾸기 시작한 것 아닐까. 여신의 가치가 영원한 것만큼, 그 가치는 텅 비어 있고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앵글이라도 바꿔보려는 건 아닌가. 이제야 난 내가 왜 ‘중독’이라는 위험천만한 단어를 썼는지 스스로 이해하게 된다. 중독되는 것은 언제나 무미건조하다. 담배가 맛있어서 피우는 사람은 없다. 그냥 피우는 거다. 그게 중독인 거고(그리고 그는 괜히 담배 종류를 바꿔보기도 할 것이다, 앵글 바꾸듯).
아사다 마오 파이팅이 모든 것이 내가 아사다 마오를 응원한 이유였던 것 같다(물론 난 담배도 끊었다). 비록 그녀에게 허락된 앵글은, ‘2인자’라는 앵글 단 하나였지만, 최소한 그녀의 눈물은 무미건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이 되지 못한 인간의 눈물이다. 아사다 마오 파이팅.
김곡 영화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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