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은 수많은 희생 끝에 민주주의를 이룩했지만 최근 대통령이 저지른 반민주적 행위로 그 취약성 또한 뼈아프게 확인해야만 했다. 윤석열은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명태균 게이트까지 불거지자 계엄을 선포하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백인 자본 엘리트 중심으로 권력을 재편하면서 약자와 약소국 억압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록산 게이 럿거스대학 교수는 이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 적극 개입하면서 공공담론의 파괴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왔다.

록산 게이 미국 럿거스대학 교수는 “여성들의 4비(비연애, 비섹스, 비결혼, 비출산) 운동은 급진적인 집단주의이며, 나는 이 운동이 결실을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게이 교수는 1974년 미국에서 아이티 이민자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19살에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고 양성애자로 정체화했으며 커밍아웃한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저서는 아마존 올해의 책,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나쁜 페미니스트’(문학동네 펴냄)다. 이후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인 ‘헝거’(문학동네 펴냄)를 썼고, 그래픽노블 ‘블랙 팬서: 월드 오브 와칸다’(국내 미발간)의 공저자로도 유명하다.
2024년 말 한국어로 번역된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문학동네 펴냄)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하퍼스바자 등에 쓴 66편의 칼럼을 모았다.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차별적 행태를 비판하고 흑인 페미니스트 성소수자로서 중첩된 억압과 차별을 폭로하는 ‘교차성’을 중시하며 정치부터 연예까지 다양한 이슈를 파고들었다. 한겨레21과 주고받은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그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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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제공
―윤석열은 도널드 트럼프처럼 가부장적 권위주의 국가의 남성적이고 강력한 통치자가 되고 싶어 했다. 계엄을 저질렀고,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반대했다.
“윤석열과 트럼프는 둘 다 매우 약하기 때문에 독재자처럼 군림하려고 노력했다. 부끄러워해야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능력조차 없는 것 같다.”
―트럼프 취임 직후 세계는 수렁 속으로 빠져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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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미국과 세계의 취약 계층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 자금을 삭감하고 연방 정부를 약화시킴으로써 수백만 명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이는 완벽하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지금 미국에는 야당조차 존재하지 않게 됐다. 민주당도 트럼프의 행동을 보면서 마비된 것 같다.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그 도전에 응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물론 최선의 방법을 찾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고, 쉽지 않을 것이다.”
게이 교수는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을 달래거나 협상하기 위해 트랜스젠더 권리나 차별금지 같은 핵심적인 문제를 양보해야 한다는 제안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2024년 11월17일치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우리는 가장 강력한 자들을 달래기 위해 우리의 가장 취약한 공동체를 버릴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어떤 유권자 집단도 누리지 못하는 수준의 배려와 관용을 받아왔고, 가짜뉴스를 반복해서 듣고 믿으며 열광적인 허위 주장에 기반해 행동한다며 이러한 민주주의의 파괴자들에 단호히 맞설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재당선 이후 미국의 젊은 여성들이 한국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4비(비연애, 비섹스, 비결혼, 비출산) 운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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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비 운동은 단순히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우리 삶의 물질적 조건이 개선될 때까지 이성애 중심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급진적인 집단주의이며, 나는 이 운동이 결실을 보기를 바란다.”
―10여 년 전부터 미투 운동이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유명 남성이 연루된 성폭력 사건이 반복된다.
“사법제도는 성폭력 범죄를 간과하고 피해자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여론의 법정이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성폭력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라야 하고, 유명한 남성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면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 가해자는 영화 제작, 정부의 공직활동, 음악 공연 등 어떤 공적인 일도 계속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반성해야 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 몇 년 동안 세상과 대중의 눈에 띄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신은 대학 캠퍼스 공간에도 관심이 많은데, 한국의 동덕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기로 한 계획을 두고 찬반 논란이 가열된 데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여성만 모아 가르치는) 단성 교육은 여성에게 좋은 일일 수 있다. 동덕여대 학생들이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에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현실적인 재정 문제가 존재하지만, 남녀공학으로의 전환을 통해 학교는 분명 무언가 잃게 될 것이다. 전통이 사라질 테고, 여성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캠퍼스 내 여성 전용 공간과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의 원제는 ‘오피니언’(의견)이다. 그는 유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많은 사안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표출한다. 이런 기질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재치 있고 지성적으로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자라며 그런 어머니를 존경해왔다는 것이다. 게이 교수는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지금 내 몸에는 끝없는 슬픔의 웅덩이가 있다”고 말했다. 권리와 불평등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칼럼니스트로서 첫 번째 원칙을 묻자 그는 “내 의견을 솔직하고 자신감 있고 확고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글쓴이 자신이 자기 글을 믿지 않는다면 어떤 독자가 그 글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젊은 칼럼니스트들에게 조언해준다면.
“때로는 조사할 시간과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도 주변 세계에 대한 정보를 계속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뉴스를 읽어라. 대중문화에 참여하라. 시대정신을 더 많이 알려 하고 더 많이 인식할수록, 더 빠르고 더 지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마감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독서와 연구를 할 시간이 있고, 그럼으로써 정보를 담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단 몇 시간밖에 되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활용하라.”
―문화비평가로서 케이(K)팝과 케이 드라마에 관한 의견이 있다면.
“나의 조교 케이틀린은 케이팝의 열렬한 팬이고, 특히 전세계의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방탄소년단(BTS)에 푹 빠졌다. 그 덕에 BTS를 알게 됐고 나 역시 그들과 그들의 개성, 그리고 모든 것에 완전히 매료됐다. 또한 나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본보기가 되는 케이 드라마를 즐겨 본다. ‘오징어 게임’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긴 하지만 아직 시즌 1, 2를 모두 다 보지는 못했다. 2년 전 서울에 갔을 때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다시 방문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록산 게이 교수는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지금 내 몸에는 끝없는 슬픔의 웅덩이가 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당신은 여전히 자신이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느끼는가? 사회적인 영향력과 발언권을 얻게 된 지금, 당신의 허기(‘헝거’)가 어느 정도 충족되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자신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좋든 나쁘든, 나의 허기는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어떤 허전함을 채우려 노력 중이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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