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미 허리 정도의 공공재는 민영화된 것을…”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 가상 시나리오
2018년 <변호인2> 제작사는 박 전 대통령을 캐스팅하는데…
등록 2014-02-25 13:51 수정 2020-05-03 04:27
1

1

때는 바야흐로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퇴임 뒤 연예계에 진출하여, 여배우의 길을 용단한다. 고관대작의 특혜를 모두 내려놓고, 국민 앞에 한없이 낮은 자세이기로 한 그녀가 신중하게 고른 데뷔작은 !

다음은 홍보를 위해 제작사 쪽이 미리 공개한 시나리오의 일부분이다.

S#101. 법정/낮

중요 증인의 출두에 앞서 술렁거리는 방청객들. 변호인 박근혜도 한껏 긴장했지만, ‘정의는 이긴다’는 확신을 스스로 다짐하는 듯,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한다.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고인 윤칼세(1)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격려하기도 하는 박근혜 변호인. 이윽고 여자 가이드가 증인석으로 당당히 걸어나간다. 강 검사에게 가증스러운 윙크를 하는 등, 그녀의 표정과 몸짓이 벌써 오만하기 짝이 없다.

여자 가이드 (피고인을 가리키며) He grabbed my buttocks without my permission….

여자 가이드가 거짓 눈물을 보이면, 청중은 다시 술렁이면서 피고인 쪽에 야유를 보낸다. 변호인 박근혜, 결의에 찬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며.

변호인 박근혜 존경하는 재판장님! 증인은 지금 거짓을 말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궤변을 펼치고 있습니다. “허락 없이”라니요?! 이미 5년 전에 허리나 어깨 정도의 공공재는 민영화되었습니다. 제가 대선 공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지켜낸 민생경제의 소중한 밑거름인데, 다들 기억 안 나십니까?!

강 검사 변호인은 뭘 들은 게요?! 증인이 엉덩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엉덩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소유될 수 없는 천부의 영역으로서….

변호인 박근혜 (말을 끊으며)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피고인 윤칼세는 분명히 민영화 정책에서 지켜야 할 선을 지켰습니다. 여기 피고인 증인 녹취록에 보시면 ‘허리를 한 차례 툭 치면서…’. (옆에 있는 윤칼세를 쿡쿡 찌르며) 니가 한번 말해봐라! 속 시원하게!

윤칼세 (비장하게 읊조리며) 무소의 뿔처럼 당차게 질주하라….(2)

변호인 박근혜 아이고 답답아, 좌우지간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은 분명히 엉덩이가 아니라 허리를 한 차례 (길게 강조하며) 투우우---우욱…! 쳤던 것입니다. 위로와 격려 차원에서….

강 검사 좋소! 백번 양보해서 그게 허리라고 칩시다. 그러면 허리는 민영화해도 된단 말이오?

변호인 박근혜 아이고 이 화상 답답아! 제 말은요…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은, 매각 지분 비율로 환산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그게 정 걱정되시면 매각 금지 법률을 추가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아니 이 정도 계산도 안 되는 분들이 어찌 대한민국의 법관이란 말입니까?

강 검사 (당황한 듯 수세에 몰리며) 에헴, 변호인! 그게 무슨 모욕적인 언사요!

변호인 박근혜 그리고 검사님과 판사님의 논리대로 죄다 공공재이면, 저 아가씨는 언제 시집가란 말입니까? 법률이 무슨 정조대라도 됩니까?

윤칼세 (눈을 감고 비장하게) 무소의 뿔이 당찰 때 시집가라….

변호인 박근혜의 논리가 합리적임을 인정하는 듯, 잠깐 청중이 침묵을 지킨다. 그러나 표독스러운 강 검사 얼른 끼어들면서 다시 억지 논리를 편다.

강 검사 시집가는 게 민영화다… 흥! 그 말이야말로 모든 것이 민영화가 가능하다고 스스로 자백하고 있는 게 아니오? 공공기관 부채를 핑계 대며, 은근슬쩍….

강 검사의 막말과 판사의 냉소, 청중의 야유가 다시 쏟아지면, 박근혜 변호인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드는 심정으로, 입을 악문다.

변호인 박근혜 예, 맞습니다. 허리와 어깨, 공공재일 수 있습니다…. (비장하게 심호흡) 하지만 그게 북괴의 공공재라면요? 김일성이의 허리와 어깨라면요?

변호인 박근혜의 기습적 폭로에 청중, 검사들 일제히 놀라고, 일시 침묵.

변호인 박근혜 - 아직 모르셨습니까? 아니면 모른 척하시는 겁니까? 저 증인, 친노 종북 성향의 미시USA와 모종의 관련 있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저 여자 가이드가 박지원 의원의 둘째부인의 언니의 딸이란 일각의 제보도 있고요!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저 순진한 피해자의 가면 뒤에 숨은 건, 북괴일 수도 있단 말입니다!

강 검사 (강하게 저항하며) 변호인, 입조심하시오! 말도 안 되는 가설을….

박근혜 변호인 - 물론 피고인이 조금 성급했을 수 있습니다. 조금 무식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선의는, 북괴의 재산을 민영화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강 검사 (무언가 들킨 듯) 서기, 기록 삭제하세요! 변호인!

변호인 박근혜 - 존경하는 재판장님, 증인에게 여적죄와 내란죄 혐의로 징역 20년을 구형하는 바입니다!

강 검사 아니 피고인 쪽 변호사가 난데없이 구형을…. 그걸 왜 당신이 판단하오?

변호인 박근혜 - 그럼 누가 판단합니까?

강 검사 국가가 판단해야지!

변호인 박근혜 - 국가? 검사님이 말하는 국가란 게 대체 뭡니까?

강 검사 변호사란 사람이 국가가 뭔지도 몰라요?

변호인 박근혜 - (눈물이 글썽)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불끈)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졸라 불끈) 국가란 국민입니다!!!!!

어느새 청중이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여자 가이드, 친노 종북인 걸 들킨 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고. 윤칼세의 지그시 감은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나지막이 흐르고(“무소의 뿔… 무소의 뿔…”이라고 연거푸 읊조릴 뿐).

변호인 박근혜 국가란 국민!!!! 국민에 백성 민(民)!!… 민영화(民營化)에도 백성 민(民)!!! 고로 국가란 민영화입니다!!!!

감동한 청중 우레와 같은 박수. 검사들은 쥐구멍을 찾는 듯, 여자 가이드는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리고(“You win!”).

환희와 감동의 도가니가 되어버린 법정,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박근혜 변호인의 입에서 5개 국어가 터져나온다. 영어, 스페인어, 불어, 중국어, 한국어.

변호인 박근혜 …a smooth sea never made a skilled mariner… our journey… our future… 불량식품 창조경제… un nouveau cadreéconomiqueà travers une “économie créative”…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百年之計 莫如樹人… $jspwO*%#W+2Q%$_w3i*ef^%….

마치 방언처럼 터진 그녀의 5개 국어에, 청중은 41번의 박수와 6번의 기립박수(3)를 반복하고. 그러나 너무 다양한 외국어·외계어를 넘나드는 바람에 도리어 사람들과 소통이 잘 안 되자, 윤칼세가 다시 벅찬 눈물을 흘리며 번역하길….

윤칼세 빙의하신 겝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합성 사진을 보게 될 겁니다. 냉혹한 눈과 그 자비로운 눈을 동시에 갖고 있는 눈이… 바로 박 변호인의 눈입니다!(4)

일동 박수.

김곡 영화감독

(1) 윤창중 전 대변인은 ‘윤창중 칼럼세상’의 대표였다.

(2) 윤창중 전 대변인이 채널A 2012년 12월11일 방송분에서 한 말.

(3) 2013년 5월8일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36분의 영어 연설 동안 총 41번의 박수와 6번의 기립박수가 나왔다고 한다.

(4) 윤창중 전 대변인이 채널A 2012년 12월21일 방송분에서 한 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