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은 2002년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액 65억원을 청구하고 임금 53억원을 가압류했다. 고 배달호씨는 이런 악랄한 노동탄압 사실을 유서에 남기고 분신했다. 1993년께 어느 노동조합 행사에 참여한 고 배달호씨가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후마니타스 제공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향 같은 곳을, 떠난 지 20여 년 만에 다녀온 적이 있다. 벌써 10년이 지난 2003년 1월의 일이다. 현재의 경남 창원시 성산구 귀곡동이라는 곳이다. 한국중공업이 들어서기 전에는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귀곡동 구실마을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세계 최대의 종합기계공장이 들어서야 한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 전체가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나의 가족도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 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을, 원래 들어섰던 공기업 한국중공업이 민영화돼 두산중공업으로 바뀐 뒤에야 ‘배달호씨 분신 사망 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찾아가게 된 것이다.
6개월간 한 푼도 집에 못 갖다줘그런데 이전에 포도가 많이 났던 그곳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한겨울 공장 옆 광장의 찬 콘크리트 바닥에 새까맣게 타서 하늘을 향해 고통에 차 팔을 벌리고 누워 있던 노동자 배달호(당시 50살)씨의 주검이었다. 분신 현장 근처에 세워져 있던 고인의 차 안에서 발견된 2장짜리 유서에는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 바란다”라고 적혀 있었다. 진상 조사는 2003년 1월11∼12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두산중공업 공장 내에서 고인의 경력, 행적과 분신 전후의 상황에 대한 유족·동료·노조·회사의 주장을 듣고 자료를 수집하며 진상을 조사하려 했다. 하지만 회사 쪽은 조사에 불응한다는 입장을 밝혀 조사할 수 없었다.
조사 결과, 두산그룹은 2000년 12월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뒤 노조 무력화를 위해 노사가 합의했던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2002년 내내 노조 파업을 유도하고, 다시 파업을 빌미로 조합원에 대한 고소·고발, 해고 등 징계와 조합원 개인에 대한 가압류, 노조에 대한 가압류와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제기했음이 드러났다. 두산중공업은 당시 조합원 61명을 고소·고발해 6명 수배, 9명 구속, 6명 불구속을 초래했다. 그리고 손해배상 청구액을 총 65억원으로 해서 노조조합비 등 약 10억원을 가압류했다.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 21명을 대상으로 총 12억원의 부동산 가압류, 63명을 대상으로 총 53억원의 임금 가압류를 했다. 18명 해고, 8명 3개월 정직 등 총 89명의 조합원에게 징계를 내리는 등 극심한 노동탄압을 했다. 그로 인해 노조 활동이 위축되고 조합비가 묶여 해고노동자 생계비 지원이 불가능해져서 조합원의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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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한국중공업 노조 결성 초기부터 대의원 등으로 적극적으로 노조 활동에 참여하고 2002년에는 교섭위원을 맡았던 고 배달호씨도 어려움을 겪었다. 파업과 관련해 구속된 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회사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임금이 가압류돼 분신 당시까지 6개월 동안 한 푼의 월급도 집에 가져다주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고인은 다른 지역의 현장으로 빠지면 가압류를 해제해준다는 회사의 제안을 거부하며, 매일 아침 6시 회사에 출근하면 먼저 노조 사무실에서 생활하던 해고자와 수배자들에게 들러 그들을 챙겼고, 교섭위원으로 18명의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심한 자책을 했다고 한다.
ILO도 정부에 개선 권고했는데결국 배달호씨가 분신하게 된 것은, 두산중공업의 비상식적 노조 파괴 공작 등에 근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라는 방법을 통한 노조 활동의 탄압, 무력화가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두산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사회적으로 기업 쪽에서 가압류 및 손해배상을 통한 민사적 대응으로 노동3권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법원은 집단적 노사관계라는 노동문제의 특수성, 사회법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민사법의 일반적 원칙으로 이 문제를 바라봤다. 법원의 이러한 태도가 이 비극의 제도적·사법적 배경이었다. 이런 까닭에 국제노동기구(ILO)도 2001년 3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노동분쟁에 대해 시민법의 일반법인 민법·형법의 전면적인 적용을 통한 해결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임을 들어 가압류 및 손해배상 청구와 업무방해죄를 통한 문제 접근에 대해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배달호씨의 분신을 계기로 노조·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사회문제화되자, 정부와 법원도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제기되는 가압류 등에 대해 개선안을 마련하고 가압류 결정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그러나 최근인 지난 11월29일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2009년 쌍용차 대규모 정리해고 당시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파업 참여 노조원 등에게 회사엔 33억1140만원, 경찰엔 13억7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이전에 정리해고자와 희망퇴직자, 무급휴직 복직자 154명의 임금·퇴직금·부동산 등에 대해 28억9천만원의 가압류를 결정하기도 했다. 배달호씨가 분신한 뒤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헌법,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에 의해 보장되는 단체교섭·쟁의행위에 대해 사 쪽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신청이라는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쉽게 사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적으로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법원의 태도도 여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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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열사는 평소 ‘호루라기 아저씨’로 불렸다. 노조 집회가 있을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참여를 독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패 꽃다지는 배달호 열사의 추모곡 제목을 ‘호각’이라고 지었다. 고인은 분신하기 하루 전날 퇴근하면서 수도꼭지를 사갖고 돌아와 고장난 수도꼭지를 교체한 뒤 아내에게 봉투 겉면에 ‘배달호 45만원’이라고 써서 주었다. 추모곡 가사를 옮기며 고인이 처했던 상황과 마음과 슬픔을 생각한다.
호각새벽 흐린 광장에 그대 홀로 서 있네
오십 평생 일해온 지난 시절의 기억
한 번도 놓지 않은 호각을 입에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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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부르네 새벽 어둠을 넘어
숨막히는 작업장 아무 대답도 없네
싸움은 지쳐가고 분노마저 사라져
무너진 현장 위로 조여오는 칼날뿐
닫힌 나의 가슴은 숨을 쉴 수가 없네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
검게 물든 깃발은 내 가슴을 흔드네
천둥 같던 그대의 호각 소리 들리네
세상은 그대론데 주저할 게 무언가
그대 호각을 이제 내가 입에 물고서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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