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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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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꾼다

청춘 바쳐 싸웠지만 나날이 험악해지는 인권 현실… “그만 접자” 2년을 틴 철거민들을 설득하며 나는 괴로웠다
등록 2013-10-24 15:46 수정 2020-05-03 04:27

어제(10월17일)는 강행군이었다. 아침 7시30분 차를 끌고 집을 출발해 둘째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인천국제공항공사로 가속 페달을 밟고 달렸다. 한국공항공사에 대한 국정감사가 그곳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흘 동안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의 한국공항공사 사장 취임을 저지하기 위해 용산 유가족과 진상규명위원회 식구들과 농성을 했다. 함께 농성하던 공항공사 노조는 김석기 신임 사장과 타협하고 천막마저 걷어버렸다. 취임식을 하는 10월16일 새벽, 김포공항은 너무 추웠다. 거센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노조가 실리를 취하려 우리와의 약속을 저버린 게 가슴 시려서 더욱 추웠는지 모른다. 결국 그의 취임식을 막지 못했다.

10월17일, 너무도 바빴던 하루

그러고도 다시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유가족들과 함께 국정감사장을 찾아 피켓시위를 했다. 그런데 그의 관용차가 바로 우리 눈앞을 쌩하고 지나갔다. 유가족들이 튀어나갔지만, 현장의 경비와 경찰에 막혔다. 유가족들은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날 국정감사장에서 김석기 신임 사장은 투명인간이었다. 야당 의원은 그를 상대로 질의하지 않고, 부사장에게 질의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김석기 사장은 용산 참사의 책임을 전부 부하들에게 돌린 무책임한 인물이었다. 전문성을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용산 참사에 대해 정당한 법집행을 강조했고, 때에 따라선 유가족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다는 없는 말도 지어서 해왔다. 일주일 넘게 떨어지지 않는 감기몸살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맨 오른쪽)이 지난 10월16일 서울 과해동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김석기 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맨 오른쪽)이 지난 10월16일 서울 과해동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김석기 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오전 10시, 국정감사장을 뒤로 하고 서울 여의도로 달렸다. 서비스연맹 노조원들을 상대로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1시 교육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와 2시부터 인권강좌 기획 모임을 가졌다. 기존 인권강좌가 주제를 나열하고 거기에 맞는 인기 강사를 배치해 진행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 우리 인권센터에서 하는 인권강좌는 전체 강좌가 일관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인권의 항목을 나열식으로 제시하는 인권교육은 공허하다.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조약에, 그리고 헌법에 우리의 인권이 이러저러하게 규정돼 있다고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처한 무권리 상태를 어떻게 스스로 주체가 되어 극복하고 무권리의 사회를 재구성하도록 할 것이냐는 내용으로 강좌를 구성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함께 고민하면서 만들어가려는 진지한 모습들이 좋았다.

오후 5시, 차를 몰아서 한 철거지역에 들어갔다. 철거가 시작된 뒤 길거리에서만 천막농성을 한 지 2년이 지난 곳이었다. 운전하면서 그곳을 가면서야 점심도 먹지 못했음을 알았다. 한겨울을 다시 길거리에서 나다가는 몸도 마음도 더욱 만신창이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2주 전에 와서 설득한 일이 있었다. 이제 접자, 억울한 심경이야 알지만 한겨울을 더 난다고 해서 공사를 지연시키지도 못한다, 공사에 지장도 없으니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인데 몸만 축난다고 설득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괴로웠다. 그들이 잘못한 게 아니고,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었다. 두리반처럼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들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 부부만으로, 그리고 미약한 연대의 힘만으로 두리반과 같은 승리를 맛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쉬운 게 없으니 맘대로 하라고 뻗대는 조합이나 시공사를 상대로 조정을 해왔던 K 교수도 같이 거들었다. 결국 그들은 어려운 결단을 했다. 이제 그들은 곱창집을 다시 열고 장사를 시작할 것이다. 최대한 유리하게 합의가 되도록 도움을 주기로 했다. 세입자들의 권리는 무시당하기 일쑤인 현실을 어떻게 바꿀까? 관련 법률은 모두 세입자의 무권리만 확인해주고 있다. 잘못된 법을 개정하고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들을 설득한 나는 잘한 것일까?

그들을 설득한 나는 잘한 것일까
수많은 인권활동가들의 분투에도 우리의 인권은 얼마나 초라한가. 2008년 9월 몸에 쇠사슬을 두른 채 한국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KTX 여승무원들(왼쪽)과, 지난 4월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경찰의 농성장 강제 철거에 저항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한겨레 자료

수많은 인권활동가들의 분투에도 우리의 인권은 얼마나 초라한가. 2008년 9월 몸에 쇠사슬을 두른 채 한국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KTX 여승무원들(왼쪽)과, 지난 4월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경찰의 농성장 강제 철거에 저항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한겨레 자료

저녁 7시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리는 표현의 자유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유난히 정체가 심한 날 저녁이라서 걱정했지만 가까스로 시간에 맞췄다. 내란 음모 사건 이후 조성된 매카시즘을 해부해보는 토크쇼에 출연하기 위해서다. 이호중 교수, 조희연 교수, 한윤형 기자가 패널이었고,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 진행을 맡았다. 객석은 텅텅 비어서 힘이 빠졌고, 두통은 더 심해지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래도 재미있게 하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말이 술술 풀려나오지 않았다. 내란 음모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기반이 허술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공감하면서도 너무 원론적인 얘기만 나열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는 자유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적다. 증오하는 사상, 내가 싫어하는 사상이라도 자유롭게 말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소중한 때다. 증오와 혐오의 아이콘이 돼버린 통합진보당을 같이 증오할 게 아니라, 국정원이 법원에서 무죄로 결론 날 사건을 무리하게 터뜨린 점에 주목해서 봐야 한다는 얘기에 함께한 사람들은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또 한 곳을 들러야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에 들어온 시간은 12시30분, 나는 원고를 쓰기로 하고 컴퓨터를 켜놓고 오늘 하루 동안 들어온 전자우편을 확인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검색하면서 소식을 확인한다. 혹시 놓치고 있는 일은 없을까? 하지만 곧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 유난히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피곤함, 감기몸살로 축난 몸을 생각해 전기장판을 켜놓고 땀 흘리고 잤다.

내가 바쁘게 살고 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그리고 매일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사는 건 아니다. 하루에도 인권활동가들이 관심을 갖고 대응해야 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이명박 정권 이후 전국 곳곳에서 터지는 인권침해 현장을 다 갈 수도 없다. 경남 밀양 송전탑 저지 투쟁 현장에서 인권침해 감시를 하는 인권활동가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마음만이다. 일정표를 아무리 뜯어봐도 시간 내서 밀양까지 갈 짬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밀양의 할매들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만 아파한다.

대한문에 갖는, 인권운동 참 못했다는 생각

얼마 전 서울 대한문 행사에서 만나 선배에게 넌지시 한마디 했다. “대한문에 오면 인권운동 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회·시위의 자유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도 못하고요.” 선배는 흘려들었지만, 요즘 심정이 그렇다. 나는 내 청춘을 다 바쳐서 인권운동을 해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내 후배들도 그랬다. 그래서 세상은 바뀌었고, 인권 감수성과 인권의식을 가진 사람도 많아졌다. 우리가 얼마나 현장에서 치열하게 불복종하면서, 연행과 구속, 벌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몸으로 싸워왔나. 그런데 우리는 대한문에서 농성장 하나 지켜내지 못했고, 대한문 인도에 화단을 설치하고 그것을 경비하는 경찰을 물리치지 못했다. 남대문경찰서의 경비과장이라는 자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집회의 자유, 이런 왜소해진 인권의 모습에 나는 절망하는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실현해야 할 의무를 진 국가는 여전히 폭력적으로 우리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매일 전국에서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빽없는 사람들이 내몰리고 쫓겨나고 눈물 흘리고 있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곁에 있고 싶고, 그래왔고, 제주 강정마을에도 시간 나는 대로 찾아가 연대해왔는데, 세상은 더 험악하게 변했다. 인권이 설 땅은 막대기 하나 꽂지도 못할 정도로 협소해졌다. 폭력을 앞세운 공권력 앞에, 부자들의 편에 분명히 선 계급적인 사법부 앞에서, 국가의 인권침해에 면죄부를 발행해주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인권에 반하는 법률을 제정해주는 국회 앞에서 우리의 인권은 얼마나 초라해졌는지…. 참담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애감이 드는 요즘이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현장을 외면하지 않아온 인권운동인데, 어느 인권단체의 모토처럼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분투해온 나날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가 휘두르는 인권 파괴에 대해 시민들은 그리 분노하지 않는다. 사는 게 힘겨워서일 것이다. 끝없이 내몰리는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을 하면서도 갈수록 가난해지고 비루해지는 삶에 지쳤을 것이다. 무권리의 노동현장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견뎌내는 데 점점 익숙해지는 사람들, 그러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으면 엄습해오는 절망감 끝에 벼랑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들….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에서 인권을 얘기하는 게 사치일 수도 있겠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인권운동을 꿈꾼다

그래서 인권운동의 앞길을 새롭게 모색해보고 싶다. 이제 소수의 인권활동가가 치열하게 활동하는 것을 넘어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인권운동의 꿈, 시민이 교육의 대상에서 주체가 되어 인권활동가가 되는 꿈, 그들이 주체가 되어 무권리의 상태를 바꾸고 사회를 재구성해가는 꿈, 경쟁으로 파괴된 관계를 복원하고 사회적 연대를 실현해가는 꿈, 평등과 정의 없이는 자유도 없음을 자각한 시민들이 세상을 바꾸어가는 그런 꿈 말이다.

이런 꿈을 실현하는 인권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연재를 마무리한다. 그동안 못난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 ‘박래군의 인권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을 써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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