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국 일간지 가 한국의 해병대캠프 사진을 올해의 기괴한 사진으로 꼽은 적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외국 언론의 눈엔 아동학대나 다름없는 오싹한 장면이 우리에겐 무심히 스쳐 보내는 일상이거나 장려되는 훈련이다. 사람의 감각이란 이토록 사회적이다. 그 감각의 차이가 올여름 충남 태안의 해병대캠프 사고를 예고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학교 밖으로 내달리는 아이들</font></font>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와 함께 이달 초 전국 학생 인권·생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고민을 거듭하다 붙인 보고서의 제목은 ‘변화를 거부하는 학교, 내몰리는 학생들’이었다. 조사 결과, 해병대캠프처럼 기괴한 사진으로 꼽힐 법한 체벌이나 두발단속, 강제학습과 같은 악습은 여전히 기세등등한 반면, ‘교육’과 ‘학교’ 사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 간극만큼 학생들은 외로웠고 마음은 학교 밖으로 내달렸다.
벌점을 받았을 때 나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셋 중 하나만 그렇다고 답했다. 벌은 협박이 아니라 깨달음을 돕는 행위여야 한다는 교육철학이 들어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 셈이다.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진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고 답한 결과 앞에서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성적이 낮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울수록, 학교에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학생에게 학교는 더 숨 막히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성적 이외의 고민이나 약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교사, 굴곡진 삶의 고통을 딛고 일어설 지원의 기회를 학교를 통해 만나는 건 소수에게만 허락된 요행이었다. 인권침해가 있어도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테니 못 본 척한다’는 대답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우리 사회 인권과 민주주의의 암울한 미래가 점쳐진다.
이 무참한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은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학교야 원래 그렇지’라는 무심한 외면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감각은 아니었을까. 학생들이 지루함과 모욕을 견디며 내지르는 절규와 몸짓은 대개 의미 없는 소음 또는 문제행동으로 분류된다. 교권 침해라는 딱지도 따라다닌다. 과거 문제아라는 낙인이 이제는 학교 부적응, 반항행동 장애 등의 오명으로 바뀌었을 뿐, 문제의 원인을 오직 학생에게만 돌리는 관행은 그대로다. 지금의 학교 체제가 유지되는 유일한 힘은 어쩌면 제도의 피해자를 제도의 부적응자로 바꿔치기하는 진단의 폭력일지도 모르겠다.
권위적·폭력적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한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 실험이 그나마 학생들에게 숨통을 틔워주었음이 처음 확인된 점은 나름 위안이 된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지역의 학생들은 조례가 없는 지역에 비해 폭력과 차별에 덜 노출되었고, 교사에게 더 자주 말을 건넸다. 교사가 응답해주리란 믿음이 학생의 말문을 틔웠다.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고 답한 학생의 비율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혁신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교사와 학교에 대한 신뢰감은 좀더 높아졌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 자유 속에서만 타인을 향한 감각이 확장된다</font></font>이 자그마한 변화조차 학생들의 줄기찬 외침과 교사들의 응답이 빚어낸 결실이다. 어떠한 교육개혁도, 어떠한 민주주의도 학생과 교사의 자유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학생을 겁주는 교육은 겁먹은 시민을 만들고, 정권에 굴복한 교사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기에 그렇다. 자유 속에서만 타인을 향한 감각이 확장되고, 감각이 재구성돼야 새로운 교육을 꿈꿀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지금 간신히 확보한 노동권조차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 교사들이 있다. 학생들은 애초부터 인권의 ‘예외’였다. 학생도 교사도 타인을 향해 확장된 감각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잔혹한 현실 앞에 놓이게 된 셈이다. 각자의 생존만 추구되는 침묵의 학교에선 교육이 일어날 수 없다. 지금 전교조에 가해지는 설립 취소 위협은 민주주의와 교육의 위기와 이렇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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