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계절을 맞이하여 이번에는 휴가관련 얘기.
15년 넘도록 필자의 자전거 여행 친구인 A씨는 2년 전쯤 여름, 늘 그러듯 아내와 제주도 자전거 여행에 나섰다. 그런데 예전과는 다른 신기한 체험이 이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하물을 접수하던 창구 직원이 자전거를 포장해놓은 박스에 대한 추가 요금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그해부터 ‘골프채나 자전거 같은 스포츠 아이템’에 추가 수하물 요금을 물리기 시작했다나.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다며 저항하는 A씨에게 직원은 흔히 겪는 일이란 듯 능숙하게 웹페이지를 띄워 보여줬다. 과연 ‘수하물 관련 규정’이라는 국회의장 연설급의 따분한 글 아래쪽에 희미한 회색 7포인트 글자로 뭔가 그런 내용이 적혀 있긴 했다. 그런데 이 요금을 추가하고 보니 굳이 저가항공사 티켓을 산 의미가 없다. ‘그런 줄 알았다면 당신네 비행기 안 탔다’라고 항변해봤자 씨도 안
먹힐 것이고, 결국 A씨는 입술 질끈 깨물고는 요금을 치렀다.
하지만 뭔가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탑승권을 예매할 때부터 ‘스포츠 아이템’이 있는 손님인지 여부를 묻고, 미리 추가요금까지 계산하도록 하는 게 정상이다. 군바리 초코파이 감추듯 ‘추가 규정’을 홈피 한 구석에 숨겨놓는 건 명백한 낚시행위다.
A씨로서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건, 자전거를 숲·환경 파괴의 첨병 골프장과 관련된 도구와 뭉뚱그려놓은 무신경 및 장삿속이었다고 한다. 그건 어쩌면 장삿속이 아니라, 몇조원 들여 멀쩡한 강 뒤엎으면서 친환경 녹색성장 울부짖던 당시 정권에 알아서 발맞추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A씨는 이미 왕복 티켓을 끊어버린 이 항공사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궁리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서울로 귀환하는 날 제주공항에서 ‘스포츠 아이템’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 창구 직원에게 준비해간 비장의 대사를 날린다.
“이 박스 내용물, 스포츠 아이템 아닌데요.”
하지만 직원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더란다.
“그럼 뭐지요?”
밤안개처럼 은밀히 퍼져나가는 불안감을 떨치며 A씨는 계획대로 밀어붙였다.
“악기예요. 키보드.”
하지만 이 돌부처 창구 직원은 여전히 눈하나 깜짝 않은 채 이 극악무도한 도발에 태연히 대응한다.
“그럼 중량을 재서 나오는 대로 정산하시면 되겠습니다.”
무게를 달고 요금표를 보니 ‘스포츠 아이템’ 탁송료의 거의 두 배가 나오더란다. 항공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자전거 박스에 있는 대로 쑤셔넣은 짐들 덕분이었다. 물론 돈 때문에 일으킨 거사는 아니다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고 한다. 더구나 이래서는 항공사의 얍삽행위에 대한 응징이라는 본연의 목적도 달성될 수 없다. 하여, 그는 깊은 번민 끝에 최종병기 대사, 즉
“실은… 키보드형 자전거거든요”
를 치려 했으나,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아내로부터 정강이 걷어차기 제지를 받고 그냥 초과된 추가 요금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font size="4">꼭 상처 입은 자존심 때문은 아니고</font>
A씨는 요즘도 아내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제주도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꼭 ‘키보드형 자전거’ 사건 때문만은 아니란다. 필자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개발의 마수는 이미 강정마을을 훌쩍 넘어 제주의 울창하고 아름답던 중산간까지 치고 올라왔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국제적 코미디쇼 이후, 제주도는 더욱 가속을 붙여 인공적이고도 식상한 하와이풍 리조트 아일랜드로 몰락해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그 누가 ‘그 광란을 스포츠 아이템 요금 따위까지 내가며 보고 싶지는않다’는 A씨의 항변을, 상처 입은 자존심의 몸부림으로만 치부할 것인가. 대체 그 누가.
한동원 작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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