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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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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내린 친구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친구와 영종도 횟집에 가다가 ‘감금치사’로 기소당한 피고인
실제 상황을 재현해보자 ‘안전사고’임이 여실히 드러났는데…
등록 2013-07-31 17:33 수정 2020-05-03 04:27

“이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 고합니다.” 새벽 2시 법정에 울리는 재판장 의 목소리에 피고인은 울먹인다. 3시간 전 검 사는 그에게 살인일 경우 징역 15년, 감금치 사일 경우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기다리게’ 소리샘에 남긴 메시지
영원히 그의 인생에 트라우마가 될 그 사 건은 설 연휴 전날인 2013년 2월8일에 일어 났다. 그날 그는 만나기로 약속한 23년 지기 친구를 SM5에 태우고 저녁 식사를 하러 행 주산성 식당가로 이동하던 중, 영종도 횟집 이 낫겠다는 생각에 신공항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톨게이트를 지나서 5km쯤 간 고속 도로에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 찍힌 영상에 의하면) 그의 차는 속도가 점점 느 려졌는데(시속 20~30km쯤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승한 친구가 차문을 열고 내렸 다. 그는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다. 그 의 차에서 내린 친구는 불행하게도 도로에 넘어져서 의식을 잃었고, 1분30초 뒤 그곳 을 지나던 후행 차량 운전자가 어두운 3차 로에 넘어져 있던 그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 고 밟고 지나가 사망하고 만다. 친구가 내린 뒤 그는 회차하기 위해 고속도로 진출로를 찾으면서 운행했고, 그 친구에게 전화도 했 다.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에 그는 “이 사 람아 그렇게 내려버리는 게 어딨나. 내가 곧 그쪽으로 감세. 기다리게”라는 음성메시지 를 남겼다. 그는 회차해 사고 현장에 도착한 뒤 경찰에게 사고난 사람이 자신의 동승자 인데 내려달라고 해서 속도를 줄이고 있었 는데 내렸고, 안전하게 내린 줄로만 알았다 고 했다.
심리적 충격을 받은 친구의 가족들은 그 가 계획한 납치살인 같다는 탄원서를 냈다. 그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나는 그의 변 호인이 되었다. 수사 초기에 경찰은 그가 친 구에게 약물을 사용했는지, 가격 흔적이 있 는지, 제3의 공범이 타고 있었는지를 집중적 으로 조사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 원의 부검과 고속도로 CCTV 조사 결과, 셋 다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 참 여해 그의 진술을 들어보니, 그는 친구가 차 에서 내릴 당시 차 속도가 거의 정차 직전의 느낌이었고, 문을 열고 내린 뒤 문까지 닫히 기에 친구가 안전하게 내린 것으로 생각했다 고 했다. 그때는 순식간의 일이라서 ‘어어~’ 하면서 차를 진행했고, 후행 차의 전조등이 비치고 추돌 사고 걱정도 돼서 바로 정차하 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 회차해서 돌 아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차를 주행 한 것이라고 했다. 차에서 행선지를 바꿀 때 도 친구는 ‘너무 멀지 않냐’는 의견을 얘기한 정도였고, 톨게이트를 통과하며 거스름돈을 받느라 상당 시간 정차해 있을 때도 친구는 내려달라거나 스스로 내리지 않고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했다(그 모습은 톨게 이트 CCTV 영상에도 촬영돼 있었다). 톨게 이트를 지나자, 그는 곧 횟집에서 식사와 반 주를 할 생각에 마침 차 뒷좌석에 있던 소 주병을 집어, 운전을 하면서 뚜껑을 열어 두 모금 정도를 마셨더니, 친구가 화를 내면서 “너 미쳤어. 운전하면서 술 마시는 게 어딨 어”라며 술병을 뺏어갔다고 했다. 그 뒤 친구 가 “나 내리련다. 내려줘”라고 말해 그는 차 속도를 늦췄는데, 차가 정차하기 전에 친구 가 내려버렸다고 했다.

이반스쿨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모교에 보내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있다. 이들은 ‘성소수자 학생을 지지합니다’ 등의 문구가 쓰인 무지개 스티커와 성소수자 학생을 위한 가이드라인 7가지를 담은 홍보물도 함께 보냈다.이반스쿨 제공

이반스쿨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모교에 보내는 편지’를 봉투에 넣고 있다. 이들은 ‘성소수자 학생을 지지합니다’ 등의 문구가 쓰인 무지개 스티커와 성소수자 학생을 위한 가이드라인 7가지를 담은 홍보물도 함께 보냈다.이반스쿨 제공

정차한 듯한 느낌이 드는 30km

사실, 나는 그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그래 서 서울로 돌아가는 경인고속도로에서 내 차 의 속도를 30km 정도로 늦춰보았더니 정말 차가 거의 정차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순 간 추돌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 려왔다. 나는 그의 친구가 그 속도에서라면 안전할 것으로 착각하고 급히 하차했을 수 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신속하게 정차하지 못하고 그의 경우처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상황을 차 안에서 하나씩 재현해보니 여러 의문이 풀렸다. 나는 다음날 경찰 조사에서, 내가 경험한 것을 경찰관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안전사고 가능성을 배제했다. 나는 수사기관이 논문이라면 믿어줄까 싶어서, 밤에 교외의 고속도로에서 체감 속도가 훨씬 느리게 느껴지는 이유가 적응효과(Adaptation Effect)나 대비효과(Contrast Effect) 때문이라는 논문을 여러 편 찾아서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 검사는 안전사고로 보지 않고 결국 그를 감금치사로 기소했다.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행선지를 바꾸어 친구가 고속도로에서 내려달라고 했는데도 내려주지 않고, 술을 마시는 위험한 행동을 해서, 탈출하기 위해서 문을 열었는데 그대로 주행하여 도로에 떨어지게 하여 사망케 했으므로 감금치사’라는 것이었다.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러 차로 이동하는데, 중간에 내려줄 수도 없는 고속도로에서 불평을 하는데도 내려주지 않았다고 그걸 감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정차 도중 내린 사람을, 운전 중 술 마신 것 때문에 위협을 느껴서 탈출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친구를 감금하거나 사망케 할 경우 손해를 입을 뿐 아무것도 얻을 게 없기에 그럴 동기도 없는데. 이렇게 여러 의문이 있음에도 그는 기소됐다.

오류가 있을까봐 재판을 준비하면서 실제 피고인이 말한 대로인지 모든 상황을 다시 한번 재현해보았다. 똑같은 조건으로 차를 운행해보고, 조수석에 탄 스턴트맨을 통해 시속 30km, 25km, 18km에서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실험을 하고, 그 과정을 촬영해놓았다. 결과는 그의 말과 일치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 사건은 안전사고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운전하면서 사람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검사는 재판 직전 살인죄를 선택적으로 추가해 공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운전자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조수석에 앉은 사람을 떨어뜨려 사망케 한다는 것은 사실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날 배심원의 평의 결과 7명 모두 살인 혐의를 무죄로 보았다. 그러나 감금치사에 대해서는 5명의 배심원이 감금치사가 인정된다고 보았고, 2명은 무죄로 보았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판단이 유죄로 인정되기 위한 감금의 정도나, 입증의 정도, 법령상 하차가 허용되지 않는 고속도로의 조건에 대한 법리적 이해(설사 배심원이 본 것처럼 친구가 고속도로에서 하차 요구를 했더라도, 도로교통법상 휴게소에서나 하차시켜줄 수 있으므로 일시적으로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하차 요구 거부로 보기 어렵다) 등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본 듯하다. 이 사건은 톨게이트를 지나 5km 주행하는 동안 하차 요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서 감금으로 볼 수 없다며 배심원의 판단과 달리 무죄가 선고됐다.

나는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5개월 동안 수사기관에서, 안전사고라는 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면 하는 아쉬움을 진하게 느꼈다. 내가 그럴진대 그는 오죽했으랴. 멀고 험한 형사재판의 길은 그곳을 지나는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할퀴어놓을 수 있다.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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