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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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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유발형’ 성장

등록 2013-04-27 15:50 수정 2020-05-03 04:27

지난 4월16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제 몸에 스스로 불을 지르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기아차 광주공장이 신규 채용에 나서면서 내부적으로 나이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10년 넘게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기회를 아예 박탈해버린 데 대한 울분을 토해낸 것이라 알려진다. 정작 해당 공장에선 정규직 노동자 자녀들을 우선 채용하려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보다 이틀 앞선 4월14일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촉탁계약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내하청으로 일하다 촉탁직으로 전환됐으나, 지난 1월 계약 만료와 함께 해고됐다고 한다.
일터에서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 1월 경남 거제의 한 편의점주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지난 3월엔 경기 용인과 부산 수영구에서도 잇달아 편의점주 자살사건이 벌어졌다. 올 들어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를 견디지 못해 편의점주가 자살한 사건만 벌써 세 번째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는 사실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까지 하는 편이다. 2010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따져봤을 때, 우리나라는 33.5명으로 단연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다. 산업재해 면에서도 우리나라의 지위는 가히 독보적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 피해자는 9만 명으로, 인구 대비 비율 면에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흔히 ‘바람직한’ 목표로 받아들여지는 경제성장과 ‘어쩔 수 없는’ 필요악 따위로 치부되는 자살, 산업재해, 빈곤 등의 상관관계 면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나라의 ‘특수성’은 더욱 뚜렷해지는 추세다. 일종의 ‘한국판 예외주의’(Korean Exceptionalism)라고나 할까. 세계은행과 OECD 자료를 보자. 2000~2010년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17%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일단 통과. 하지만 같은 기간 자살률과 빈곤율의 증가폭 역시 두 번째로 큰 나라다. 그간 우리가 내달려온 성장의 길이란, 유독 ‘희생 많은’ 성장, ‘나쁜’ 성장이었던 셈이다.
최근 정부는 17조3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공개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28조4천억원)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규모인 탓에, ‘슈퍼추경’이란 말도 나왔다. 정부는 이 정도의 돈이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2.3%)를 0.3%포인트 이상 끌어올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한마디로, 돈을 쏟아부어 ‘성장’시키겠다는 얘기다.
경제용어 가운데 고용유발계수란 게 있다. 단순하게 말해 매출액이 10억원 늘어날 때마다 고용자 수가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의 고용유발계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그만큼 일자리가 따라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취업유발계수, 생산유발계수 따위의 용어도 있다. 성장률 수치 하나에 그토록 목매단 우리나라에서 만일 ‘자살유발계수’란 걸 구해본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돈을 1조원 쏟아부을 때, 성장률이 1% 높아질 때, 그 반대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또 얼마나 늘어나는 걸까? 참 나쁜 성장, 자살유발형 성장의 미몽에서 집단 탈출하는 첫걸음이 되지는 않을는지. 이제라도 ‘사귀고 나누고 누리는’ 성장으로의 궤도 수정을 위한 준비 작업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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