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올해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2월12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087호에 따른 대북 제재? 아니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의 북한 현지 실사결과, 북한의 식량 생산이 늘어 올해엔 사정이 더 어려운 곳에 우선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다. 두 국제기구는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전년보다 10% 늘어난 490만t(도정 뒤 정곡 기준)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필요 식량 543만t에 비해 50만여t이 부족하지만, 200만t 남짓 부족하던 때에 비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다. 식량 증산의 배경으로는 양호한 기상 조건, 비료의 적기 공급, 곡물 가격 인상, 개인 몫의 자유 처분권(시장 판매) 보장, 협동조합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등이 꼽힌다. 어린이와 노인 등 취약계층을 비롯한 북녘 동포들의 영양 상태는 여전히 위태롭지만, 북쪽의 식량 사정이 나아졌다는 소식은 반갑다(남이든 북이든 설에 굶는 이가 없으면 좋겠다).
마음에 걸리는 건 남쪽의 기여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2012년 남북 교류협력 관련 통계치는 심란하다. 지난해 남북교역액은 18억1600만달러(통계치가 공개된 11월 말 기준). 이 가운데 개성공단 관련 교역이 18억600만달러, 99.4%다. 개성공단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여파인지 지난해 북-중 무역은 6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남북교역을 뺀 북한의 전체 무역액의 90%다. 대중 의존도 심화는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도 원치 않는 상황이다. 중국에 종속되는 걸 피하려 몸부림쳐온 북쪽의 권력층이 지렛대로 삼을 대안은 어디일까. 미국? 일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선례가 보여준바, 현실적으로는 한국밖에 없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에 열린 기회의 창이다. 그런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최대석 통일분과 위원의 낙마 사태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암투가 치열하며 수구보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박 당선인은 별말이 없다.
나로호 3차 발사 성공을 ‘한국, 우주시대를 열다’라며 대서특필하는 언론 보도를 보곤 북쪽의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환호하는 이가 많을 터. 그러나 새 정부 출범을 앞둔 한반도 정세는 불길하다. 발등의 불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 강행 여부다. 그런데 관련 당사국 모두가 이를 기정사실로 여기며 오히려 핵실험의 내용(플루토늄을 이용한 1·2차 핵실험과 달리 우라늄탄 또는 핵융합 방식의 핵실험 여부)에 관심을 쏟는 분위기다. 뭘 어찌해야 하나.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판을 흔드는 북쪽의 행태를 비난하기는 쉽지만 비난은 해결책이 아니다. 적잖은 전문가들이 ‘협상으로는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낼 수 없으니 (평화적) 체제 전복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중국의 시진핑 총서기가 ‘한반도 비핵화와 대량파괴무기(WMD) 방지가 한반도 평화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이 북한 없는 한반도를 원치 않는다는 것 또한 비밀이 아니다. ‘북한 붕괴론’에 기대어 강경 일변도 정책을 구사한 결과가 어떤지는 이명박 정부 5년이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과 북이 치고받고 싸운 5년 동안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미-중의 처분에 운명을 맡기는 게 우리가 바라는 해법인가. 7천만 겨레의 생존과 번영을 지킬 지혜롭고도 담대한 대응은 정녕 불가능한 꿈인가. 하다못해 이산가족 상봉조차 없는 설을 몇 해째 맞는 현실이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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