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독특한 종이다. 생존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도 동족을 살해한다. 전쟁이 대표적이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 부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침팬지 정도를 빼면 인간처럼 동족을 살해하는 종을 발견하기 어렵다. 또한 인간은 목숨의 유한성과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종이기도 하다. 종교가 번성해온 토양이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모든 종교에 사후의 개인적 영속에 관한 믿음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평화(이슬람)와 사랑(기독교)과 자비(불교)와 너그러움(유교)을 권장하는 종교는 전쟁의 불쏘시개이기도 했다. 인류는 신의 이름으로 쉼없이 동족을 살해해왔다. 새뮤얼 헌팅턴이 에서 문명을 구분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종교였다.
종교가 다르면, 섬기는 신이 다르면, 쳐죽여야 할 적인가. 그럴 리가. 신이, 신심이 깊은 종교인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살펴보면,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하나의 윤리가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예수의 산상수훈에 담긴, 기독교도들이 ‘황금률’이라 일컫는 가르침이다. 랍비(유대교의 율법교사) 힐렐은 ‘토라(모세의 율법)를 연구한 내용을 한데 묶어놓은 탈무드(학습)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너 자신이 당하기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토라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 말씀의 해설에 불과하다.” 석가모니는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고 했다. 공자는 ‘평생토록 해야 할 종신행지(終身行之)를 위한 한 말씀이 있습니까’라는 자공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서(恕)라는 말인데, 이는 내가 남에게서 바라지 아니하는 일은 내가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맹자의 ‘역지사지’(易地思之), 곧 ‘상대편의 처지에서 먼저 생각해보라’는 가르침도 다를 바 없다. 기독교도들과 견원지간인 무슬림들의 성서 은 이렇게 가르친다.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자는 신앙인이 아니다.” 인도 힌두교의 경전 는 이렇게 가르친다. “내게 고통스러운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이것이 의무의 전부이니라.”
놀랍지 않은가. 섬기는 신이 다른데, 믿음이 다른데, 시대와 지역이 다른데, 똑같은 가르침을 부여잡고 있다는 사실이. 남의 처지를 먼저 고려하는 윤리의식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달리 생각하면, 오죽 사람들이 남을 배려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나 이런 가르침이 첫손에 꼽히고 있겠나. 보라. 신이 선택한 민족을 자처하는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명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나치가 유대인을 상대로 저지른 홀로코스트를 잊어선 안 된다며, 전세계 대도시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짓는 이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행하는 홀로코스트를.
얼음이 언다는 소설도 지나고 날이 춥다.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자다 불에 타죽은 할머니와 어린 손자, “함께 살자”며 맵찬 바람에 휘청이는 철탑에 오른 해고노동자들, 치킨게임을 방불케 하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 단일화’로 일단락된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황금률과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이 겨울에 온기를 불어넣으려 애써보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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