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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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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과의 싸움은 마피아와의 싸움

등록 2012-10-16 17:17 수정 2020-05-03 04:27

시민 대 원자력 마피아, 누가 셀까?
마피아 하면, 총 들고 싸우는 미국의 갱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마피아도 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피아 중 하나가 ‘원자력 마피아’ 또는 ‘핵마피아’로 불리는 존재다.
원자력 마피아는, 한마디로 원자력(핵발전)으로 먹고사는 이해관계 집단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민간기업·공기업·관료·연구기관·전문가·언론·정치인 등이 포함된다. 4대강 사업 같은 토건사업을 벌일수록 돈 버는 사람들이 있듯이, 원전을 짓고 유관 사업을 키울수록 이익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모이자. 그리고 목소리를 내자. 오는 20일에는 청계광장에서 원전 반대 시민 집회가 열린다. 지난해 11월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신규 핵발전소 선정 철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류우종

모이자. 그리고 목소리를 내자. 오는 20일에는 청계광장에서 원전 반대 시민 집회가 열린다. 지난해 11월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신규 핵발전소 선정 철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류우종

그들만의 부패 카르텔

이익을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원전을 운영하고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들이다. 이들은 많이 지을수록 몸집이 커진다. 쓰는 돈의 규모도 커진다. 공사계약, 입찰 같은 것도 많아진다. 떡고물도 많다. 지난 7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이 원전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됐다. 이런 사건은 원전을 둘러싼 부패 카르텔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원전은 1개를 짓고 원자로와 기계를 설치하는 데 3조원 넘는 돈이 들어가는 대형 사업이다. 원전 공사는 재벌 건설사들이 수주한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SK건설, GS건설… 이런 회사들이 원전 건설 공사를 수주한다. 원자로는 두산중공업이 공급한다. 그 외에 원전에 필요한 각종 기계와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들이 있다.

원자력과 관련해서 쓰이는 공적인 돈은 막대한 규모다. 매년 5천억원을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과 용역에 쓰는 것으로 추산된다. 관료·정치인·언론·전문가들도 원전 옹호에 힘을 보탠다. 원전은 막대한 이권사업이고, 이권사업을 옹호해야만 자리나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원전을 많이 지은 나라에는 이런 원자력 마피아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자력 마피아의 영향력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그중 원자력 마피아의 힘이 특히 센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이 나라들의 원전 정책, 더 나아가 에너지 정책은 원자력 마피아들이 좌지우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원자력 마피아는 영원하다’는 게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원전 문제에 대해 관심과 전문성이 없는 국회와 대통령은 마피아들에게 끌려다녔다. 민주정부라고 불리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마피아들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다. 원전 건설은 계속됐고, 2004∼2005년 전북 부안 등 여러 지역에서 핵폐기물처리장(방사선폐기물처분장)의 건설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원자력 마피아들의 세상이 왔다. 이들은 원전 수출까지 부르짖으며, 덤핑으로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했다. 그 이익은 물론 원자력 마피아들이 보았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했다는 원전 건설 공사는 6조4천억원에 달한다. 이 공사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나눠가졌다.

원자력 마피아들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공격적으로 원전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의 꿈은 더 많은 원전을 짓고, 수출도 하고, 재처리도 하는 것이다. 재처리는 발전에 사용하고 난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다시 발전연료로 쓴다는 발상이다. 재처리는 아직까지 기술·경제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위험한데다 경제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원자력 마피아의 처지에서는 일단 일을 벌이는 게 좋으니 재처리도 하고 싶어 한다.

최악의 사고 확률, 42기로 늘어나면

원전 덕분에 원자력 마피아들은 이익을 보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을까? 첫째, 모든 시민이 피해자다. 원전은 위험하다. 사고가 나면 무사할 사람은 없다. 전남 영광이나 경북 울진에 있는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서울 사람들도 무사하지 못하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방사능은 1천km 떨어진 지역까지 오염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낡은 고리 원전 옆에는 부산과 울산이라는 대도시가 있다. 여기서 사고가 나면 3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피해야 하는 대재앙이 발생한다. 국가가 붕괴할 정도의 큰 타격을 입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 국민들은 이미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보면 사고 확률이 너무 높다. 전세계적으로 지금까지 건설된 500기 남짓한 원전 중 6기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 가동 중인 원전이 23기고, 앞으로 42기까지 늘린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사고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한번 계산해보시라.

둘째,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은 직접적인 피해자다. 보상금을 받는다고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지만, 그 땅에 계속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반대할 수밖에 없다. 사고 위험도 문제지만,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원전 주변 지역 여성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평균보다 2.5배 높다. 그래서 최근 정부가 신규 부지로 선정한 강원도 삼척이나 경북 영덕 주민들은 원전에 대한 걱정이 크다. 삼척 시민들은 원전을 추진한 삼척시장을 주민소환까지 하려고 한다. 오는 10월31일에는 삼척시장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셋째, 어린이·청소년 같은 미래 세대가 가장 큰 피해자다. 원전도 영원히 가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폐쇄해야 한다. 폐쇄한 원전은 거대한 방사능 폐기물이다. 우리는 이것을 처리해야 할 부담을 미래로 떠넘기고 있다. 발전에 쓰고 난 사용후 핵연료는 20만 년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위험물질이다. 이 부담도 미래로 떠넘기고 있다. 우라늄도 지하자원이라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원자력발전은 계속할 수 없다. 지금의 어린이·청소년과 미래 세대는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는 써보지도 못하고, 폐쇄된 원전과 사용후 핵연료 처리 부담만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문제가 많은 원자력발전을 왜 계속하느냐’고 묻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원전으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제는 새로운 원전을 그만 짓고, 낡은 원전은 폐쇄해야 한다. 최대한 안전하게 관리하고 미래 세대에게 주는 부담을 줄여야 한다. 이것이 윤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다.

결국 원전에서 벗어나느냐 못하느냐는 시민들과 원자력 마피아 간의 힘겨루기에 달렸다. 소신 없는 정치인들은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 독일은 30만 명이 모여 반핵집회를 하고,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핵폐기물 수송을 몸으로 막았다. 반핵을 부르짖는 녹색당이 등장했다. 그래서 겨우 ‘원전 폐쇄’ 결정을 내렸다. 2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폐쇄해나가고 있다. 일본 시민들도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심 집회가 뜸하던 일본에서 10만 명이 모여 원전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미래의 생명들이 안전하도록

일본 가까이 있음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움직임이 약하다. 그사이 이명박 정부는 공격적으로 원전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래서 오는 10월20일 오후 2시, 한국에서도 원전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인다. 미래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시민들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다. 지방에서도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온다고 한다. 내가 한 번 행동하면, 나와 우리,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생명들이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모이자. 그리고 목소리를 내자. 원자력 마피아보다 시민의 힘이 강하다는 걸 보여주자.





녹색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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