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5일 오전.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강원도 홍천군청 앞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다. ‘조상묘 훼손, 불법 골프장 공사, 홍천군수·세안레저 각성하라’라는 구호다. 골프장을 건설하는 업체가 묘를 무단으로 훼손했는데 홍천군이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묘지는 땅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게 돼 있다. 법으로도 그렇지만 상식적·윤리적으로도 그렇다. 그런데 도대체 골프장 건설을 어떻게 하길래 묘를 훼손하는 일이 생겼을까?
녹색? 빗물도 통과하지 않는 인공사막
사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현재 강원도에서 건설 중인 골프장은 문제투성이다. 주택가 바로 옆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곳도 있다. 집으로 골프공이 날아올 수 있을 정도로 민가와 골프장의 거리가 가깝다. 골프장에서 살포하는 농약이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지나 주택가로 날아갈 염려도 많다. 어떤 지역에서는 비가 많이 올 경우 골프장에서 쏟아지는 물로 수해를 입을 수도 있다. 골프장에서 뽑아 쓰는 지하수로 인해 인근 마을에서 물이 부족해질 가능성도 높다. 골프장은 눈으로 보기에는 푸르지만 실제로는 빗물도 통과하지 않는 인공바닥으로 된 ‘녹색 사막’이다.
골프장은 공익시설도 아니고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시설도 아니다. 이런 시설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면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골프장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골프장 증가 실태를 보면 이미 골프장은 포화 상태에 달했다. 전국의 골프장 수는 2011년 말 현재 운영 중인 것만 410개에 이르고, 건설 중이거나 착공 전 단계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531개에 이른다. 2003년에 181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평균 40개에 가까운 골프장이 새로 승인을 받았을 정도로 급속하게 늘었다.
이른바 민주정부 시절에도 골프장은 늘어왔지만, 쐐기를 박은 것은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였다. 이명박 정부는 여러 규제를 완화해 골프장을 쉽게 지을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비교적 땅값이 싸고 새로 뚫린 도로 덕에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좋은 강원도가 개발업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강원도에는 이미 50개 골프장이 있지만 새로 34개가 건설 중이거나 추진 중이다. 이 골프장들의 면적을 합치면 여의도의 32배, 축구장 1만1815개에 맞먹는 규모다.
이렇게 강원도에 골프장이 마구 추진되자 주민들의 반대도 거세졌다. 주민들은 사전환경성검토서 등 각종 서류를 조사해 많은 부분이 허위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강원도 골프장의 인허가 과정은 불법·편법투성이였다.
엄연히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인 동식물이 살지 않는 것처럼 서류가 작성됐다.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을 개발 가능 지역으로 둔갑시키려고 나무의 나이, 수, 높이를 줄여 서류가 작성됐다. 사업자들은 이런 식으로 허위로 작성된 서류를 가지고 골프장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유착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이 이런 조작을 묵인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15.2%… 벌써 줄어든 이용객 수
골프장을 추진하는 민간사업자가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한 법률도 큰 문제다. 골프장은 영리를 추구하는 시설인데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골프장을 ‘공공·문화체육시설’로 분류해 사업자가 개발 대상지 내 토지의 80% 이상을 매입하면 토지매수를 거부한 나머지 20%를 강제수용할 수 있게 했다. 2011년 6월30일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2012년 12월까지는 기존 법 조항이 적용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부르짖으며 골프장이 지역에 도움이 될 것처럼 얘기한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18홀 골프장의 지방세 수입은 5억~6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지역 주민의 고용 효과도 풀뽑기·청소 등 일용직에 한정된다. 지역경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골프장 경영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너무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특히 강원도 골프장의 1홀당 이용객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2011년 강원도 내 골프장의 1홀당 평균 이용객 수는 2648명으로 2010년(3122명) 대비 마이너스 15.2%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골프장을 지어봐야 출혈 경쟁밖에 안 된다.
골프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태도다. 최문순 도지사는 지난해 4월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왔을 때, ‘당선되면 골프장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주민 동의도 없고 청정 환경을 훼손하는 골프장에 자신도 반대한다고 했다.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골프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민관협의회는 구성되었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320일이 넘는 동안 강원도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70살이 넘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길거리에서 지냈다. 과거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불법적으로 허가된 골프장을 취소한 사례도 있고 송영길 인천시장이 계양산 골프장을 백지화한 사례도 있지만, 최문순 지사는 그런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사업자는 주민들을 고소·고발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마을마다 여러 건의 소송이 걸려 있다. 몇 년의 싸움을 이어가다 보니 생활이 말이 아니다. 홍천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제 우리는 막바지에 놓여 있다. 최문순 지사가 공약을 지켜서 골프장 인허가를 직권으로 취소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주민은 “우리가 골프장에 반대해서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하는 마지막 주민들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0월13일, 13차 생명버스가 간다
‘주민들이 보상금을 바라고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주민들을 힘들게 한다. 주민들은 보상금도 필요 없다고 얘기한다. 정말 보상금을 바랐다면 진작에 싸움을 접고 합의를 봤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터를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자연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이렇게 힘든 과정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의 얘기 속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동안 주민들과 함께하고자 환경단체, 시민사회단체, 생협 등의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매달 1번씩 ‘생명버스’가 강원도로 갔다. 10월13일에는 13차 생명버스 프로그램이 있다. 주민들은 10월13일을 자신들이 버텨온 싸움의 마지막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날은 특별하게 오후 2시 춘천역 앞에서 3천 명이 모이기로 했다. 이날 3천 명이 모여 최문순 지사와 정치권에 강원도 골프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을날 춘천에 가서 이분들에게 작은 힘이라고 보태주면 어떨까?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골프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녹색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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