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남영동 대공분실이 따로 없다

‘어느 날’ 너무 어려웠던 기합
등록 2012-08-28 17:35 수정 2020-05-03 04:26

학교에서 굴렀거나 맞았던 일을 이제, 여기 복기해본다.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다. 지금 와서 억울하다거나, 고소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맞아봐야 잘 때릴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패지 말자는 세계평화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냥, 학생들은 맞지 않고 컸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1984년 9월15일 국민학교 4학년 때다. 날짜까지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일기에 썼기 때문이다. 청소를 못했다고 선생님이 기합을 줬다. 기합 자체는 ‘엎드려뻗쳐’로 단순했다. 기록자의 꼼꼼함이 전한 자세는 무림비급의 내공수련법, 카마수트라의 기기묘묘한 자세와 흡사하다. “오른손 열중쉬어를 하고 오른쪽 발을 들고 왼쪽 손을 굽히는 것이다. 몇 분 하니까 힘이 쭉 빠졌다.” 한번 따라해봤다. 개도 네 다리 중 한쪽 다리만 들고 일을 본다. 이건 못할 짓이다. 일기는 이어졌다. “또 선생님이 시간을 주셨는데 그것도 못했다고 원산폭격을 하라고 시키셨다. 원산폭격은 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려뻗쳐하고 열중쉬어를 하는 것이다. 오늘 기합은 너무 어려웠다.” 눈물이 나올 뻔했다. ‘오늘 기합은’이라고 썼다. 기록되지 못한 어제와 다음날의 수많은 기합들이 시간이 흐르며 실전되고 말았다. ‘조선기합실록’을 남기는 사관의 자세가 아니다. 어쨌든, 일기 검사를 한 선생님은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었다. 뭘?

중학교 1학년 수학 선생님. 여자 선생님이었다. 숙제를 안 해오면 거짓말 안 하고 100대씩 때렸다. 우선 손바닥 10대를 지휘봉으로 탁탁탁탁 때린다. 손바닥을 뒤집게 하고 손등(손가락 뼈 부위)을 10대 톡톡톡톡 때린다. 종아리를 빠른 속도로 20~30대 파바바박 때린다. 허벅지를 10대 퍽퍽퍽퍽 때린다. 다시 손등을 10대 톡톡톡톡 때린다. 이거, 완전 미친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따로 없다. 이 선생님과 친한 음악 선생님이 있었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다가 수학 선생님이 감질나게 때리는 것이 보기 싫었나 보다. 갑자기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를 꺼내더니 자기가 대신 때리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의 특기는 원래 30cm 플라스틱 자로 볼때기를 빠른 속도로 파바바박 눈에서 불나게 때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눈물나게 맞던 덩치 큰 운동부 애가 손가락으로 똑 잣대를 부러뜨리기 전까지는. 그 뒤 빗자루로 갈아탔다.

고등학교 때 문법 선생님은 귀밑머리가 아니라 남학생들 젖꼭지를 비틀며 잡아올렸다. 국사 선생님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이유 없이 복도 신발장에 놓인 아무 운동화나 꺼내 내 머리를 가격했다. ‘묻지 마’였다. 주변에 당구장은 많았고 학교에는 야구부마저 있었다. 의천검, 도룡도, 타구봉이 끊임없이 공급됐다. 당구 큣대, 대걸레 자루는 때릴 때 부러지기라도 했다. 야구부 펑고배트는 일반 배트와 달리 단단하게 압축돼 있다. 무심하게 휘두른 펑고배트에 정신머리는 곱게 접어 하늘 위로. 이웃 여고에는 하키부까지 있었다. 학생 교류는 없는데 신무기는 도래인을 통해 끊임없이 전래됐다. 그나마 여고생들이 두 손 잡아 사용하던, 혹은 여고생들의 엉덩이를 가격했을 하키 스틱에 맞는 게 어디냐고 발그레한 얼굴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때리는 체벌은 법으로 못하게 돼 있다. 굴리는 체벌이 과도하게 발전하려나. 우리의 체벌을 찾아서. 이 소리는 기합받는 중학생 김아무개군이 내는 소리입니다. 체벌 교관도 할 수 있겠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