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빛의 속도(!)로 늘어난 세상입니다. 가계부채가 1천억원, 아니 1천조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감이 잘 안 오죠? 우리나라 인구만큼 나누니, 한 사람당 빚이 2천만원이 넘네요. 도대체 국민들이 정신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벌이가 적으면 적게 써야 할 것 아닙니까. 이해가 안 갑니다. 그래서 여기, ‘알뜰살림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빚을 지는 동안에도 허리띠 졸라매고 저축한 모범 사례를 발굴하자는 취지지요. 먼저 아깝게 수상에서 탈락한 후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재테크를 위해서는 공직자 윤리 따위는 콧방귀로 날리시고 서울 강남에 꼼수를 써서 집을 장만했던 VIP께서도 막판까지 심사위원을 고민하게 했습니다. ‘쪽팔림’ 따위는 쌈에 싸먹고 동네 정육식당 밥값까지 법인카드로 긁으신 방송사 사장님께도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두 분 다, 제 마음속의 우승자이십니다. 자, 그러면 영광스러운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
영예의 동상은 ‘위원장’님에게 돌아갔습니다. 짝짝. 하필 명함에 ‘인권’이라는 이름이 붙는 바람에 종종 ‘인권위원장’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분께서 첫 번째 수상자가 되셨습니다. 이분은 흑인을 ‘깜둥이’라고 표현하거나 “우리나라에 아직 여성 차별이 존재하느냐”라는 식의 재기발랄한 발언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만, 사실 누구보다 알뜰한 재테크로 이름이 높으십니다. 비결이 궁금하시다고요? ‘투잡’입니다. 강의는 위원장의 이름으로, 강의료는 개인 통장으로 챙기는 센스도 발휘하셨습니다. 강의가 없을 때는 한 국립대에 특강을 열어달라고 먼저 요구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대학 관계자는 “인권위에서 먼저 특강 요청이 있었고, 강의료도 받았으면 하는 눈치였다”고 말했네요. 대단합니다. 그냥 눈치가 아니라, ‘돈을 부르는’ 눈치입니다. 수상자로서 부끄러움이 없지요.
은상의 영광은 우리 기획재정부에 돌립니다. 짝짝짝. 재정부는 경기 침체의 시대에 몸소 절약정신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요즘, 과소비가 문제지요. 너도나도 명품을 소비하니 빚이 늘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재정부는 뼈를 깎는 절약정신으로 애장품을 과감히 내놓았습니다. 인천공항입니다. 재정부의 말을 들어보니, 재정부가 공항을 파는 이유는 ‘공항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였습니다. 이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도대체 공항을 얼마나 아끼기에 이렇게 이별을 고하는 걸까요. 인천공항은 국제공항협회(ACI)가 실시한 세계공항서비스평가에서 7년 연속 1위를 했습니다. 이미 경쟁력은 검증됐다는 얘기죠. 우리 재정부가 길가에 내놓은 명품인 인천공항, 이제 경쟁력은 아마도 하늘을 뚫을 겁니다.
영예의 금상은… ‘형님’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분은 실로 ‘전방위적인’ 재테크 정신을 발휘하셨습니다. 겸손하신 성정 탓에 드러내놓고 선행을 하지도 않으셨네요. 이분의 고귀한 정신을 높이 산 검찰도 이분의 계좌만큼은 오래 건드리지 않았지만, 태양을 보자기로 가릴 수 있을까요. 검찰의 말을 통해 들려오는 ‘덕담’을 들어보면, 이전에 몸담았던 코오롱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으셨습니다. ‘활동비’였습니다. 의원실 운영비 계좌에도 정체 모를 7억원이 오래 쌓여 있었습니다. 저축의 방식도 아주 고전적이셨네요. 그 돈의 출처에 대해 “집안 행사 축의금으로, 그동안 집 안방 장롱 속에 보관해왔던 것”이라고 하셨네요. 7월3일에는 검찰을 친히 찾으신답니다. 아마도 위기에 빠진 아무개 저축은행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또 ‘재테크’하신 요령을 알려주려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뭐라고요?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던 것 같다고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거 없었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이 상은 상금이 없거든요.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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