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올라온 지 16년째. 더 기막힌 건 월급쟁이 인생 어느덧 8년7개월째라는 사실. 지난날의 힘든 노동을 떠올리며 조용히 맥주 한 캔 따요. 지나간 통장에 찍힌 숫자 떠올리며 묵묵히 소주 한 병 따요. (에라이, 편의점에서 양주나 따버릴까.) 그나마 편집장 몰래 아침 보고 뒤 대변인실 소파에서 몰래 드러누워 자거나, 취재하러 간다고 해놓고 라면 한 그릇 당기던 소소한 땡땡이가 위안을 주네요. ‘아~그래도 나는 주체적 노동자로구나!’
그러나 소소한 땡땡이로는 만족할 수 없는 시련의 날이 닥쳐오네요. 보통 땡땡이는 몰래 치지만, 요건 회사에서 땡땡이 잘 치라고 멍석 깔아주죠. 그러나 7박8일 여름휴가는 왜 이리 짧은지. 윤전기에는 농한기도 없어요.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님이 종북언론 윤전기와 서버에 냅다 모래 뿌려주시면 어떨까 해요. 육사 나오신 군 출신이니 야간 침투도 잘하실 거 같아요. 성공하시면, 회사 앞 ‘스핑크스’ 호프집으로 오시길. 한 의원님 덕에 여름휴가 2주 이상으로 길어진 종북언론 기자들이 한잔 살게요.
이 칼럼에 맞물린 대통령님 사진 보며 누군가 이렇게 생각하실 거 같아요. ‘이제 다 끝난 분인데 저 사진 보고 부글거릴 사람 있나?’라고요. 정말 삐딱하고도 교조적인 시각이에요. 전 비록 기자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통령님 사진 봐도 부글거리지 않아요. 대통령님 사진이나 영상을 볼 타이밍에 늘 편집장이나 편집국장이나 사장 얼굴을 떠올리죠. 게다가 전 대통령님이 한국 사회와 정치에 기여할 일이 남아 있다고 믿어요. 농담 아니라니까요.
2011년 이명박 대통령님은 8월3일부터 딱 4박5일 여름휴가 갔어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당시 청와대는 휴가도서 목록도 발표하지 않았어요. ‘나 책 안 읽고 그냥 논다니까’라는 그 솔직함이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님을 다시 봤어요. ‘솔직함이 본의 아니게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구나!’ 그때 처음 대통령님이 한국의 진보에 도움될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2011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월18일 여름휴가를 떠났어요. 기간은 열흘. 금융위기에 웬 휴가냐는 비난도 나왔어요. 백악관 당당해요. 백악관 대변인이 휴가를 옹호하는 모습. 저건 진보·보수 이념으로 설명 안 되는 어떤 삶의 태도 차이. 서글퍼요. 한국과 미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차이가 대략 2배예요. 대통령 여름휴가 차이도 2배?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님이 아직 할 일이 있어요. 눈 딱 감고, 올 여름휴가를 지난해보다 2배 길게 가세요. 9박10일만 다녀오세요. 위에서 인간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기업과 관공서, 공기업이 따라올 거예요. 책은 들고 가지 않는 게 가장 좋아요. 혹시 가져가더라도, ‘후까시’ 잡는 책 말고 아다치 미쓰루 신작 만화 들고 가시고요. 6·3 사태 때 시위대 선두에 섰을 때나 현대 다닐 때 선두에서 마사지숍으로 향하던 기분 되살려, ‘선빵’ 날려주세요. ‘여름휴가 가서 아예 안 돌아오시는 게 한국 사회 진보에 더욱 좋습니다’라거나 ‘휴가 가서 그냥 휴거나 당하시죠’라는 비아냥은 당당히 무시하시길!(정 무시 못하시면 그거라도 하시는 게 물론 좋긴하…)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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