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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레이디 가가의 음악은 전혀 전위적이거나 급진적이지 않다. 촌스러운 단어가 허락된다면, ‘이지 리스닝’이다. 좋은 의미에서건 아니건 지극히 대중적인 음악이다. 그녀가 마치 ‘반문화’(Counter Culture·지배문화에 도전하는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건 파격적인 비주얼과 퍼포먼스 등 이미지 마케팅 때문이다. 그것이 레이디 가가라는 가수가 지금 글로벌 마켓에서 잘 팔리는 까닭이다. 한마디로 레이디 가가는 자본주의 시장의 최첨단에 서 있다.
‘나라의 자존심’ 운운하며 “마이클 잭슨 정도만 돼도 반대 안 한다. 고급문화를 선도하진 못할망정 어디서 사탄숭배 무당을 돈 주고 데려와?”(@HeavenlyPiano)라는 식의 반응이 코믹해지는 건 이 대목에서다. 이런 이들은 ‘한류 아이돌’이 “국위 선양한다”며 환호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바로 그 한류가 기를 쓰고 좇아가지만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4차원의 벽’ 너머에 레이디 가가라는 존재가 있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만 소동을 벌인 건 아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레이디 가가의 공연에 ‘18살 미만 관람 불가’ 판정을 내렸다. 그 결과 한국은 이번 월드투어 국가 중 유일한 검열국이 됐다. 이건 ‘나쁜’ 사태라기보다 ‘후진’ 사태다. 시장의 첨단과 문화적 지체가 정면 충돌한 결과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이 성사되면 한국에서 동성애와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자살이 늘어날 거라는 식의 일부 개신교 단체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과 비슷한 성향으로 추정되는 어느 목사님들이 벌인 어떤 ‘공연’으로 답을 대신하는 게 좋겠다. 2003년 2월7일의 사건이다. 서울 종로의 영풍문고 앞 도로에서 1t 트럭 짐칸에 2명의 백발 노인이 올라탄 채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대구의 어느 교회 홍아무개 목사 등인데, 현장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며 뭇 시민들의 ‘멘털을 붕괴’시킨 이유가 있다. 이 영감님들, 헤어누드였던 거다. 트럭 옆면에는 단호한 묵시록적 비전이 적혀 있었다. “2월20일 오후 6시 북괴 김정일은 남침한다!” 트럭에 올라탄 목사가 딱 2명인 건 예수의 주검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해 황야를 달려가던 두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트럭 뒤의 과장스럽게 커다란 확성기는 뿔나팔을 불어 예리코 성벽을 무너뜨린 여호수아의 기적을 형상화한 오브제다.
그 어떤 전위예술가도 서울이라는 거대 도심 한복판에서 아방가르드 미학을 이렇듯 철저하게 밀어붙이진 못했던 것 같다. 표현의 자유를 맘껏 누린 이 ‘전위예술’ 이후 모방 행위가 무분별하게 벌어졌을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없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일부 개신교 단체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제정신이었다. 반면 시민들은 지금 일부 개신교 단체가 제정신인지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박권일
저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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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종교전쟁이 불붙을 태세다. 그러나 한쪽만 열내는 것 같아서 상황은 오히려 싱겁다. 레이디가가 공연이 이 소동의 중심에 있다. 한국 개신교계가 겨냥하는 주요 타깃은 동성애와 자살충동이다. 악마 따위가 아니다. 이 트윗이 드러내는 태도는 ‘그 따위 비과학적인 억측으로 레이디 가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을 감추고 있다.
레이디가가가 악마라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이라는 말이다. 죄를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휴머니즘이 여기에 드리워져 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레이디 가가를 ‘위해서’ 이들은 기도를 한다. ‘가가양’이 정신 차리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개신교도를 광신도나 맹신자로 치부하고 비난하는 것을 ‘모함’이라고 규정한다. 개신교도라면 레이디 가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레이디 가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에 대한 공격도 정당하다. 심지어 레이디 가가에 대한 저주도 ‘악한 영’에 대한 것이니 문제될 게 없다. 개신교도들이 벌이는 모든 행동은 나름대로 이유를 획득한다.
그런데 이 논리는 놀라운 전도 현상에 근거한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파격적인 레이디 가가의 ‘공연’이라는 형식이지, 그 내용이 아니다. 레이디 가가의 노래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건전하기 이를 데 없다. “태어난 대로 살라”는 주장이야말로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이 주신 대로 살라는 것은 존 로크 이래로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해온 원칙이었다. 이 원칙 자체를 ‘악한 영’의 사주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말하자면, 쇠고기로 만든 의상을 입거나 적나라한 폭력 장면을 보여주는 공연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레이디 가가가 불러일으킨 논란은 대체로 충격적인 퍼포먼스에 있지, 노래나 발언에서 드러나는 반기독교적 내용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된다면 레이디 가가 자체이지, 실체 없는 ‘악한 영’이 아니다. 그래서 저주를 퍼붓는 대상이 레이디 가가라는 ‘인간’ 이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무엇보다도, 레이디 가가 공연에 대한 일부 한국 개신교도들의 과민반응은 동성애와 자살충동을 부추길 수 있다는 ‘자녀 문제’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다. 이것이야말로 개신교로 대표되는 한국 중산층 문화를 가장 위협하는 요소이기에 그렇다.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가 만들어낸 형이상학적 반응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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