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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에 옵서예

등록 2011-07-29 08:07 수정 2020-05-02 19:26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다. 엄마 생일이라고 큰맘 먹고 다녀왔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지 엄마가 물었다. 엄마 보러 온 거니, 강정 때문에 온 거니? ‘희망의 버스’ 다녀와 새까맣게 탄 딸이, 제주 도착하자마자 강정마을에 먼저 들렀다 오니 그런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엄마 생일이라고 갔다. 그래서 조금 부끄러웠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건설 지역으로 발표된 것이 벌써 2007년이다. 지난해에도 이미 주민들이 공사를 막기 위해 싸우다가 여럿 연행됐다. 토지 수용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구럼비 바위가 있는 해안으로 나가는 길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기지 건설을 위한 펜스로 막혀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이제야 발을 떼 겨우 해안가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이미 전쟁의 기지

길을 안내해준 평화바람 식구를 따라 구럼비 바위가 있는 바닷가로 나갔다. 멀리서 보면 그냥 돌들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이 1.2km에 이르는 한 덩어리 바위다. 천연기념물인 범섬 등 그 일대는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정했고, 제주도 역시 절대보전지역으로 정해 바다를 매립하거나 건축을 하지 못하도록 한 곳이다. 그러나 해군이 요청하자 2009년 도지사는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했다. 환경은 그대로인데 보전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항의해 주민들은 해제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법원은 주민들에게 소송 자격이 없다며 판단을 거부했다. 해군기지가 절대보전지역보다 중요하다고 하소연이라도 해야 할 해군의 품을 지자체와 법원이 알아서 덜어준다.

주민들은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연행과 구속을 감수해야 하는데 해군은 ‘계획된 공정에 따라 추진하고 있을 뿐’이란다. 그러면서 ‘밀어붙이기식 공사 강행’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주민들 의견은 듣지 않고 ‘계획에 따라’만을 되뇌는 것이 강행 아닌가? 해군은 2007년 강정마을 일부 주민이 해군기지 유치를 신청했으니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지만, 같은 해 8월 60% 이상의 주민이 참여해 94%가 반대한 주민투표 결과는 언급하지 않는다.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공익사업’만 되면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데 ‘공익’이 무엇인지는 공공기관이 정하면 끝이다.

‘공익’을 자처하는 공공기관이 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공익’이라는 말 없어도 서로 도우며 어울려 살던 주민들은 갈등에 휩싸인다. 골머리를 앓으며 싸우는 주민들을 ‘사익’에 사로잡힌 것으로 치부하며 공공기관은 묵묵히, 조사를 하고 설계를 하고 펜스를 두르고 모래를 쌓는다, 계획에 따라. 이렇게 한 지역공동체가 파괴된다. 전쟁에 대비한 기지라는데, 이미 전쟁의 기지다. 이 지경까지 오면 어김없이 따라붙는 말이 또 있다. 벌써 너무 많이 진행돼서 중단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대화 좀 하자고 하면, 공사를 지연시킨다고 공무방해, 업무방해죄로 체포되고 구속된다. 삼성과 대림 등의 시공사는 미안한 줄 모르고 주민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전쟁이 벌써 시작됐으니 중단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전쟁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내야 하는 것이고, 전쟁을 끝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 당장’ 중단하는 것이다.

평화를 길어올리는 방법

‘공익사업’으로 포장된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해군의 계획이었을 뿐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계획도, 붉은발말똥게와 제주새뱅이의 계획도, 구럼비 바위의 계획도 아니었다. 해군이 고집을 버리면 된다. 그때까지 강정마을은 사람들을 기다린다. 약간의 지역주의적 감수성을 보태면, 제주는 ‘평화의 섬’이라고, 비가 뿌옇게 흩날리는 날이면 꿈속에 서 있는 것 같은 바닷가가 있는 섬이라고 자랑할 수 있다. 여행길에 들르든, 지지 방문을 위해 찾아가든, 그 섬에 가보시라. 몸이 가기 어려우면 현수막을 보내고 텐트를 보내는 방법이 있고, 보내기가 어려우면 강정마을에서 담근 전복젓을 받는 방법도 있다. 이 시대에 평화를 길어올리는 방법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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