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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계 아이돌을 아느냐

‘1타 강사’로 불리는 스타강사를 팬처럼 좋아하고 롤모델로 삼는 범생이 청소년 문화
등록 2011-07-09 11:17 수정 2020-05-03 04:26
인터넷 강의 스타강사는 학습지도를 넘어 고민상담까지 해주며 학생들과 '관계'를 만든다. 이런 정서적 교류를 통해 그들은 '선생'이 된다. 한겨레교육 제공

인터넷 강의 스타강사는 학습지도를 넘어 고민상담까지 해주며 학생들과 '관계'를 만든다. 이런 정서적 교류를 통해 그들은 '선생'이 된다. 한겨레교육 제공

하위문화라는 게 어디 날라리 청소년들에게만 존재하겠는가. 범생이들에게도 하위문화는 있다. 당장 잘나가고 싶어 안달 난 녀석들이 ‘찐’(일진+이진+삼진 등등) 행세를 하고 있을 때, 이 친구들은 그저 얌전히 앉아 공부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도 묵묵히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곤 한다. 하다못해 입시에 찌들어 사는 것 또한 문화 아니겠는가.

입시를 준비하는 10대들에게 인강(인터넷 강의)은 꽤나 친숙한 문화다. PMP 등에 동영상을 넣고 수강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러면서 새롭게 등장한 풍경이 있으니 이른바 1타 강사, 즉 특A급 스타강사들의 탄생이 되겠다. 국어 이근갑·최인호, 영어 김기훈·로즈리, 수학 삽자루·신승범, 사회 최진기 등등. 물론 과거에도 007가방에 현금을 쓸어담는 스타강사들은 즐비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인강 1타 강사들의 위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1타 강사는 정확지 않으나 수강 신청에서 마감이 제일 먼저 되는 경우를 1타라고 하는 데서 유래됐다는 얘기가 있다). 이들은 100억원에서 200억원대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연매출 규모를 자랑한다. 심지어는 전임연구원·연구조교·알바생까지 고용하는 일종의 걸어다니는 기업이다.

미래에 잘나가고 싶어 현재를 담보 잡힌 입시생들에게 이들 1타 강사는 어떤 존재일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저들이 과거처럼 단지 잘 가르치는 학원강사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1타 강사의 성공 조건 중 하나는 수강생과의 친밀감 넘치는 대화와 의사소통이다. 강의 도중 학생들이 지칠 때쯤이면(그들은 그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강사는 연애나 음주같이 입시생들의 일상적 고민은 물론 사회·정치적 시사 문제까지 섭렵하며 대화를 시도한다. 바로 이 개념 충만한 순간에, 1타 강사는 단순한 강사가 아니라 진정한 ‘선생’의 의미를 획득한다.

이러한 정서적 교류를 통해, 1타 강사와 그들의 ‘커리를 타는’(강의를 지속적으로 듣는) 수강생 사이에는 스타와 팬에 필적하는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아이돌 팬들이 아이돌의 음악과 그 너머의 어떤 것을 구매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입시생들은 1타 강사의 강의와 더불어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구매하고 교류한다.

강사의 게시판에는 학습정보에 관한 문답만 오가는 게 아니다. ‘오늘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요’라든가 ‘죽을 것 같아요. 어떡해야 할까요?’ 같은 고백성사와 심리상담도 이뤄진다. 오프라인에서 1타 강사를 볼 일이라도 있으면 사인을 요청하는 학생도 있다. 선생의 사인과 격려가 작지 않은 힘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자신이 커리 타는 선생의 라이벌 강사를 지지할라치면, 당장에라도 라이벌 강사를 비판하고 자기 선생을 옹호·추천하고자 달려든다. 이 정도면 열 아이돌 안 부럽지 않은가.

물론 이러한 현상이 개운치만은 않다. 하지만 진짜 블랙코미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실은 녀석들도 이 요상한 스타덤이 아이러니할뿐더러 문제적일 수 있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시판의 상담글 대부분이 사실은 알바생이 올렸다.’ ‘입시 강사한테 나는 수십만 수강생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갈수록 산업화되는 사교육 시장은 한국의 진정한 교육문화에 위해가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 모든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지옥과도 같은 고통의 바다에 별다른 출구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넘어서는 어떤 것에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블랙코미디 2부도 있다. 1타 강사에게 더 심하게 매료된 몇몇은 장래희망을 아예 학원강사로 삼기도 한다. 아마도 선생들에 대한 정서적 동일시와 더불어 경제적 성공신화로 인한 (비)현실적 고려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몇몇 1타 강사들은 새끼 강사들을 육성하는 일종의 매니지먼트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도 한다(아이돌 스타 시스템에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이 있다면, 사교육계에는 이미 메가스터디 손주은이 있다).

1타 강사 스타덤, 나아가 한국의 사교육. 어디까지 갈지 실로 예측하기 어렵다. 어쨌든 이 이름 모를 잡초에게도 이제는 이름을 붙여줄 때가 된 듯싶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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