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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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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사교육 셧다운제 도입하라

청소년을 문제로 보는 ‘꼰대’의 시선으로 도입한 온라인 게임 셧다운제…
실제로는 20~30대가 10대보다 게임 이용 시간 더 길다는 통계 있어
등록 2011-05-11 17:21 수정 2020-05-03 04:26

오늘날 10대 문화에서 컴퓨터게임은 분명 중요한 키워드다. 그들은 게임에서 또래만의 언어를 창조하고 세계를 상상한다. 게임 용어인 ‘셔틀’ ‘퀘스트’ ‘미션’ ‘오크’ ‘쉴드’ ‘만렙’ 등은 현실의 언어가 됐다. 일상의 스트레스는 ‘버그’나 ‘일시적 오류’ 따위로 둔갑하고, 경쟁에 따른 조바심은 ‘렉’이나 ‘다운’으로 치환되며, ‘득템’을 하거나 ‘리셋’ 버튼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이 점쳐진다. 게임 없는 10대 문화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시민사회가 들썩거리고 있다. 청소년 온라인게임 셧다운(Shut-down)제 때문이다. 지난 4월29일 국회를 통과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올해 11월부터 16살 미만은 자정에서 새벽 6시까지 온라인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된다. 이에 대응해 시민사회 쪽에서는 개정안이 청소년의 문화적 인권을 침해할뿐더러 게임산업의 진흥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올 하반기에는 해당 청소년, 그들의 학부모, 게임업계 등 세 주체를 중심으로 위헌소송이 있을 예정이란다.

PC방은 남녀노소 모여서 게임을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PC방은 남녀노소 모여서 게임을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렇게 부정적 효과가 빤한데도 셧다운제가 강행되는 이유는 뭘까. 다름 아니라 청소년과 게임을 연결하는 예의 ‘꼰대’적 시선 때문이다. 청소년은 게임에 중독되기 쉽다, 게임에 과몰입하면 건강을 해치고 학습에 지장을 준다, 정상적 사회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워진다 등등. 그에 따른 논리적 귀결은 자명하다. 청소년의 문화적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시각에서 청소년은 ‘인간’ 범주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통념이란 사실보다는 말초적 직관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언제 우리가 이런 질문들을 고심해본 적이 있던가 말이다. 10대들이 게임에 빠져 있기는 한 걸까? 게임이 정말 공부에 지장을 줄까? 게임 때문에 정상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될까?

불행하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도입·시행하는 정부·여당에는 그 흔한 실증적 근거마저 없다. 10대들이 컴퓨터 게임에 취약하리라는 판단은 거의 종교적 믿음에 가깝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을 이용하는 시간은 10대(하루 평균 40분)보다 20~30대(각각 80분과 55분)가 더 많다(‘아이템 현금거래의 사회·문화적 영향 분석’·2007). 유독 청소년의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은 무기력증에 빠진 20대와 30대다).

온라인 게임이 학습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는 또 어떨까? 통념에 따르면 학습 시간과 게임 시간이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주당 학습 시간이 26시간을 넘어서면 게임 시간은 오히려 늘어난다. 이런 결과는 다음 중 하나를 뜻한다. 첫째, 게임을 많이 하는 10대는 공부도 많이 한다. 둘째,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여가 시간이 부족해져 다른 활동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에 손이 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두 번째 해석을 지지한다. 청소년의 ‘정상적’ 사회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게임이 아니라 오히려 공부 쪽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10대들의 건강권과 수면권을 침해하는 것은 결국 게임보다 입시경쟁 스트레스가 아니던가. 게다가 일반적으로 게임 과몰입이라 하면 ‘은둔형 외톨이’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10대들은 집에서 혼자 게임하기보다 PC방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시간은 오히려 공부에 중독된 경우다.

그런 까닭에 10대 문화가 컴퓨터 게임에 친화적이라 해서 그들이 사회적 편견의 희생양이 되고, 나아가 문화적 인권마저 박탈당한다는 것은 희대의 역설이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앞으로 우리의 영리한 10대들은 꼰대들의 시선을 피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며 셧다운의 위기를 모면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법 개정이 범죄를 부추기는 셈이다.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초점은, 정상적 사회에서 셧다운해야 할 것은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사교육을 비롯한 입시 교육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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