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설날이다. 우리 나이로 한 살을 더 먹고, 떡국도 먹는다.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걸 반기는 이들도 있고 저어하는 이들도 있겠다. 그러나 어찌하든 우리는 한 살을 더 먹는다. 다만 그 한 살의 무게가 다르다는 게 마음에 걸릴 뿐이다.
어릴 적 한 살을 더 먹는 건 동네 골목에서 형성된 위계질서에서 한 단계 상승을 의미했다. 인구의 재생산이 이어지는 한, 조무래기들은 그렇게 한해 한해 자신의 위상을 가슴 뻐기며 높여갔다. 놀이터에서 만난 낯선 얼굴에게 “너, 몇 살이야?” 하고 묻는 질문의 자신감이 한 해만큼 붙었다.
청소년기에는 한 살씩 더 먹는 게 존재론적 회의를 한 꺼풀씩 더해줬다. 왜 사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봄은 왜 찬란한가,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어느 해 떡국을 먹고, 이웃집 동생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고 몽정을 했다. 활짝 핀 목련처럼 화사한 앞날이 괜히 서러웠고, 점점 더 세상과 직각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이른바 어른이 돼서도 한 살을 먹는 일은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을 만나는 일이었다. 알량한 지식도 늘고, 세상 보는 눈도 어슴푸레 넓어지고, 엮이는 사람도 많아지고, 소주를 마시며 할 이야기도 시시콜콜 늘어갔다. 김광석의 를 부를 때 느끼는 감정도 정확히 한해 한해 계단을 올라갔다.
이런 식으로 나이를 따라 계속 써나가는 것은 독자를 지겹게 할 것 같다. 요컨대, 설날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한 해의 시간만큼 성장한(또는 그저 달라진) 자신과 직면하고 그런 사실을 자축(또는 자학)한다. 다만 그 한 살의 무게가 서로 다르다는 게 마음에 걸릴 뿐이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를 비롯해 그동안 이 전한 ’생명 OTL- 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 시리즈를 통해 생명에도 각기 다른 값어치가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탓이다. 소득에 따라, 학력에 따라, 사는 곳에 따라 건강의 정도가 달라지고, 수명이 달라지고, 죽음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걸 기사로 증명하면서 편집진 스스로 착잡했다. 그렇게 건강한 삶의 기간이 불평등하다면, 기대수명이 더 짧은 빈자의 한 살은 기대수명이 더 긴 부자의 한 살과 비교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찌 보면, 그러니까 한 개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한 해의 비중으로만 따지자면, 한 해의 가치는 빈자에게 더 큰 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60번 새해를 맞을 수 있는 사람과 80번 새해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매번 맞이하는 새해의 가치가 누구에게 더 클지는 또 다른 계산법의 문제다. 그저 산술적으로 60분의 1이라고 80분의 1보다 무겁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당장 우리 각자가 전자와 후자 중에 어떤 경우를 택할지 생각해보면 된다. 이렇게 같은 한 살을 먹어도 그 값어치는 다르고, 그 목숨값을 높이기 위해 경쟁에서 더 앞서려 애쓰고, 더 벌려 애쓰고, 더 좋은 동네에 진입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런 노력만으로는 남들은 물론 자신도 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이번 표지이야기에서 전하는 바다. 서로 나눠서 사회가 평등해져야 부자든 빈자든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떡국을 먹고 한 살을 더 먹으면서, 내 목숨의 가치는 남과 비교해 얼마나 늘어났나를 생각하는 사회는 인지상정을 떠나 과학적으로도 건강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건, 눈 내린 아침에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일 뿐, 친구와 부딪치는 술잔에 담긴 옛이야기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일 뿐, 부모님을 바라보는 마음에 조금씩 철이 드는 것일 뿐,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의 넓이와 색깔이 달라지는 것일 뿐, 달라진 목숨의 무게를 새로 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떡국을 먹고 한 살을 더 먹으며, 이 생명의 질긴 아름다움과 또한 그 어찌할 수 없는 평등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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