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살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참아보자고 했어요. 그래도 삼성인데, 참아보자고. 그래야 이긴다고.”
엄마는 참자는 말을 한 게 한이 맺혔다. 이건 아닌 거 같다고, 가족이 있는 인천으로 돌아와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엄마 옆에 있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을 설득한 게 가슴에 맺혔다.
진물이 나고 벗겨진 손발과 다리
김주현씨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과 LG라는 대기업에 떡 붙을 만큼 모범생이었다. 키 186cm에 몸무게가 90kg이 넘는 건장한 체격과 밝은 성격으로 친구도 많았다. 김씨는 주저 없이 삼성을 택했다. 지난해 1월 충남 천안에 있는 삼성전자 LCD 탕정공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는 일은 설비엔지니어였다. 클린룸 컬러필터 공정이 김씨가 맡은 업무였다. 하얀 방진복을 입고 화학약품을 취급했다. 엄마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자랑스러웠죠. 우리 가족만의 자랑이었겠습니까. 일가친척들이 모두 좋아했어요. 삼성에 들어갔다고.”
“반은 출세한 것”이라고 주위에서 덕담을 던졌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였다. 3개월 뒤인 지난해 4월 김씨가 “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가족들에게 충격이었다. 아들의 근로계약서에는 8시간 3교대, 주 5일 근무를 한다고 쓰여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다. “힘들다”며 김씨가 털어놓는 실상은 달랐다. 사실상 12시간을 근무했고, 14시간을 넘는 날도 있었다. 사실상 맞교대(2교대) 근무였다. 설비 이상이 생길 때마다 리포트를 20장씩 써내라는 지시가 떨어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고장이 해결될 때까지 퇴근하지 못했다.
여름이 되니 김씨의 피부염이 발에서 다리로, 손으로 점점 퍼져갔다. 팔·다리·손에서 진물이 나고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김씨는 인천 집에 와 눈물을 흘렸다. 결국 지난해 8월 김씨는 부장 면담을 했다. 자재관리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방진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인천 집을 찾을 때면 “밥도 제때 먹지 못할 정도로 일이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엄마, 나 회사 가기 싫어.”
지난해 11월, 김씨가 엄마에게 매달렸다. 결국 가족들은 김씨를 대신해 병가를 신청했다. 신경정신과도 찾았다. 5개월 치료를 요한다는 우울증 진단이 나왔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 인천의 ㄱ신경정신과 의원에서 6차례 진료·상담을 받은 기록에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모든 걸 놔버리고 싶다”는 말을 담당의사와 나눈 것으로 돼 있다.
지난 1월10일 김씨는 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해야 했다. 인천터미널에서 밤 9시 막차를 타고 천안으로 갔다. 자신의 기숙사 방에 돌아왔지만 김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나눴다. “주현아! 인천 와 고구마 장사 하자!”(사고 당일 밤 친구의 문자메시지) 그게 1월11일 새벽 3시5분 전이었다.
김씨는 이날 새벽 4시께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창을 넘으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2시간 뒤 가족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아빠·누나 힘내시구, 죄송합니다.”(김씨가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 김씨의 아버지는 일상적으로 오는 문자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만큼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주현스, 아빠·엄마가 미안하게 생각한다.”(아버지가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
아버지의 문자가 도착했을 즈음, 김씨는 13층 복도의 창문 난간에 오르고 있었다. 친구의 위로도, 가족의 위안도 김씨의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당시 김씨를 만났던 삼성 직원이 경찰에서 한 진술을 보면 “무엇하느냐고 묻자, ‘아무것도 아닙니다. 경치 참 좋습니다.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라고 답했다”고 돼 있다. 당시 그 직원은 안전요원 3명과 함께 6층 방으로 다시 김씨를 데려다놓았다. 그리고 폐쇄회로텔레비전에 김씨가 다시 잡힌다. 아침 6시47분. 김씨는 사라졌다. 6시 이후부터 김씨가 뛰어내린 시간까지 김씨의 엄마는 계속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7시32분. 숨진 김씨의 휴대전화를 대신 받은 119대원으로부터 김씨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씨의 가족은 “장시간 근무나 잦은 특근이 힘들다는 토로에도 회사의 강압으로 근무가 강요되지 않았는지, 피부 발진 등에 대한 호소에 회사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특히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을 그렇게 혼자 방치하는 것도, 사건이 발생한 뒤 먼저 알리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경찰의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숨을 거둔 당일, 삼성에서는 조속한 장례를 종용했다. 장례식장으로 삼성 LCD사업부의 인사담당 박아무개 차장과 산재담당 과장이 찾아왔다. 유족을 장례식장 인근 모텔로 이끌었다.
“1년 연봉 2760만원에 퇴직금, 위로금에 알파를 더 드리겠습니다. 산재는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삼성 직원들은 김씨의 유족에게 합의를 요구했다. 유족은 먼저 회사 쪽의 사과를 요구했고,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에서)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주현이한테 또 죄를 지을 것 같아서 넘지 못할 산이라는 것을 각오하고 했습니다. 불법적인 업무와 과실로 인한 죽음에 대해 회사의 최고 경영책임자가 언론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유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합니다.”(김씨의 아버지)
유족은 지난 1월14일 천안 순천향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이 함께했다. 반올림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대에서 발표한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화학물질 노출평가 자문보고서’를 보면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가 정비 작업을 할 경우 다른 직종보다 고농도 화학물질에 노출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며칠 전에 자살한 또 다른 여직원이번 김씨의 자살로 같은 공장 내 기숙사에서 바로 며칠 전 또 다른 여직원이 자살한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지난 1월3일 박아무개(23)씨가 같은 공장의 기숙사 18층에서 투신해 자살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5월 3개월 동안 병가를 내 수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복 뒤 다시 회사로부터 6개월간 휴직을 권유받고 쉬던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 쪽에서 퇴사를 종용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만 있을 뿐, 박씨의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사망 원인을 알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삼성과 유족은 장례 절차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갈등을 빚었으며, 장례도 하루 늦게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 중에는 이런 자살 사례가 더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연아무개씨는 “오빠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2004년 갑자기 집에 전화를 해서 기숙사를 나가겠다고 했다”며 “함께 일하던 동료가 투신자살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연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에스원에서의 경험담을 폭로하며 “2000년대 초의 자살 두 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며 “이런 사례들은 내부적으로만 이야기될 뿐 대부분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족과 잘 협의해 장례 절차 등을 원만히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며 “김씨의 근무 여건과 시간 등에 대해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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