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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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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3라운드

등록 2010-11-10 11:24 수정 2020-05-03 04:26

지금 군대와 불화하는 사람들? 연예인 맞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일부 연예인은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 생니를 뽑았다는 혐의를 받을 만큼 이들에게 군대는 피하고 싶은 곳이다.
불법으로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군사주의 논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대와 군인, 나아가 군대와 사회의 관계를 둘러싼 3라운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1라운드 판정은 벌써 나왔다. 이른바 ‘불온서적’ 판결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월28일 군인의 불온서적 소지·운반·전파를 금지하는 현행 ‘군인복무규율’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용기 있는 군법무관들은 변호사 자격을 얻지 못하는 등 가혹한 처분도 받았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의 핵심인 ‘책 읽을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당한 지적은 소수 의견에 그쳤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나쁜 서적, 나쁜 사랑

금서로 지정된 같은 ‘나쁜’ 책에 물든다는 말씀인데, 이렇게 ‘물든다’는 고색창연한 말은 20세기 부모의 입에서만 나왔던 죽은 말이 아니다. 나쁜 책에 물드는 것처럼 나쁜 동성애에 물든다는 생각이 법에도 반영돼 있다. 2008년 군형법 92조는 “계간(鷄姦)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위헌법률심판제청이 나온 다음인 2009년 11월 군형법을 개정하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이 강화됐다). 계간은 남성 간 동성애를 닭의 성행위에 빗댄, 오래된 ‘토착어’다. 비하적 의미인 계간 조항은 내용을 따지면 더욱 차별적이다. 군인이면 사랑인지 폭력인지 따지지 않고 무조건 남성 간 성행위를 처벌한단 조항이다. 성적 자기결정권, 다르게 말하면 사랑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도 처벌함은 물론이요 휴가를 나와서 동성애를 했더라도 처벌이 가능하다. ‘사랑이 죄인가요’는 흘러간 유행가의 가사만이 아니다. 당연히 군인이라도 사랑하는 남녀의 성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을 넘어선 ‘혐오’ 법이다.

다행히 여기는 그렇게 막 나가는 나라만은 아니어서, 인권침해 법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판사도 있다. 2008년 6월 군형법 92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군판사도 있었다. 지난 6월 헌재에서 공개변론이 있었고, 올해 안으로 결정이 나올 것이란 예측이 있다. 두 번째 라운드 판결에선 전지전능한 헌재 재판관의 현명한 판결이 나올까. ‘군형법 92조 없애서 내 아들 게이 되면, 국방부가 책임져라!’ 혹시나 나올지 모르는 이런 광고를 위해서 확인해두자면, 이 조항의 폐지는 동성애 조장이 목적이 아니라 소수자를 부당하게 처벌하는 걸 없애자는 취지다. 아, 이 칼럼을 쓰는 사이 (정말로) 속보가 떴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가 11월4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동성애 인정으로 군기강 무너뜨리는 국가인권위원회 해체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항의에 나섰다. 앞서 인권위가 10월25일 군형법 92조가 평등권, 죄형법정주의 등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헌재에 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3라운드. 병역거부자 처벌의 근거가 되는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2008년 이후 7번이나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됐다. 여기에 예비군 훈련거부자 처벌을 명시한 향토예비군설치법에 대한 위헌법률제청 2건도 있다. 역사상 유례없이 줄줄이 이어진 위헌제청에도 ‘생까던’ 헌재가 마침내 11월11일 병역법 공개변론을 연다. 병역거부자와 관련 활동가들은 공개변론이 열리는 것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는다. 이명박 정부에서 헌재 결정이 끝없이 유보될 거란 불안이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헌재의 새로운 결론?

헌재에 걸었던 기대는 대개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병역법 88조에 대해 헌재는 2004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앞서 2002년엔 군형법 계간 조항에 역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그 재판관들이 지금 헌재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한번으로 안 되면 두번, 세번,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으로 위헌 결정을 기다린다. 1라운드에서 비록 안보 논리의 손을 들어준 그들이지만, 2~3라운드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이미 1970년대 동성애를 정신의학편람에서 삭제했고, 유엔은 1980년대 병역거부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했다. 21세기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20세기 군사주의 유물은 이제 털고 가자, 제발.

추신. 군사주의 피해자 얘기를 쓰면서 격투기에서 흔히 쓰는 ‘라운드’ 같은 용어를 써서 죄송^^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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