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요일 기획회의에서 ‘나쁜 직장 상사 골려주기 대작전’이라는 콘셉트의 기사 기획안을 처음 발제할 때 기자는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를 또박또박 앞세웠다. 그런데 내 귀에는 “이 기사는 편집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라는 말로 자동 번역돼 들렸다. 상사 골려주기라…. 내심으로야 아직 현장 기자 같은 혈기를 지녔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인 관찰로는 분명 ‘상사’ 위치에 놓여 있다는 존재론적 인식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드는 서운한 생각. 내가 뭘 잘못했을까? 더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채근하고, 좀더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떠밀었던 것인데…. 공동의 선을 위해 악역을 담당했을 뿐인데….
하지만 목요일에 출고된 기사(<font color="#006699"></font> 기사 참조)를 데스킹하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됐다. 마음씨 착한 후배 기자들이 차마 대놓고 얘기하지 못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복수하고 싶어지는 상사의 유형’이다. △독재자처럼 지시사항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할 때(30.3%) △무시하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28.4%) △성과를 자신의 공인 양 떠들 때(16.9%)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할 때(14.1%) △윗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 때(8.3%).
그런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왔다고 해도 이런 행동이라면 나라도 싫어했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은 이런 행동이 좋은 의도에서 나왔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기사의 제목은 ‘부장님,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다. 장기하의 노랫말을 약간 비튼 것인데, 확 와닿는 게 있다.
제목 굿! 기사 좋았어!
그런들 무슨 소용인가. 어느 날 갑자기 표정을 바꾼 기자들이 이렇게 나오면 어떡하나?
“편집장,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
--;; 한번 잡혀봐?
2.
‘직장’은 우리의 사회생활 터전을 통칭하는 말일 수 있겠다. 그런 직장들이 모여모여 이뤄진 게 우리 사회고, 나라다. 사실 직장 상사에게 불만스러운 일이나 바라는 행위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법하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렇지 않은가.
더욱 놀라운 것은 앞에서 확인한 ‘복수하고 싶어지는 상사의 유형’이 90% 이상의 확률로 ‘복수하고 싶어지는 대통령의 유형’과 맞아떨어진다는 발견이다. 요즘 항간에서 회자되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불만 사항들을 어쩌면 그렇게 똑 빼다 닮았는지…. 마지막 유형인 ‘윗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 때’는 좀 헷갈리기는 한다. ‘윗상사’가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어쨌든 유형별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는 건 독자 스스로 사례를 꼽아보는 재미를 해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그동안 에서 숱하게 다룬 이 대통령 관련 기사와 조·중·동 이외의 일간지를 참고한다면 금세 무릎이 탁 쳐질 것이다.
애꿎은(이런 표현을 쓰는 건 나도 일종의 직장 상사라서 그런가?) 직장 상사들만 멱살 잡힐 일은 아니라는 억울함이 느껴지던 차에, 잘됐다. 어디 복수의 대상이 직장 상사뿐이랴. 우리 사회나 국가의 윗분들에게도 매일매일 시시각각 불만이 터져나오는 터에. 에잇, 나만 당할 수는 없다. 분연히 떨쳐 일어나,
“각하, 멱살 한번만 잡히십시다.”
혹시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을 위한 특별법’ 위반인가?(<font color="#006699"></font> 기사 참조)
아냐, 무죄일 거야.(<font color="#006699"></font> 기사 참조)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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