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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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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시청도 망하나요?

등록 2010-07-20 21:31 수정 2020-05-03 04:26

“고문하는 것 봤냐고요.”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들은 인권교육 현장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런 식이면 강의가 어렵다”는 강사의 말에 “어려우면 나가라”고 외쳤다. 그들의 당당함은 끈질겼다. “앞으로 고문은 안 된다”는 말에 “고문이 아니라 가혹행위”라고 외쳤다. 박수도 터져나왔다. 경찰관들의 한풀이 같은 일갈에 경찰서장도 나섰다. 그는 쿨했다. “의견은 다를 수 있다”는 한마디, “누구나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서장님, 짱이다. 고문 없고, ‘다름’을 아는 선진경찰 양천경찰서, 양천구는 행복구, 우리나라 좋은 나라.

시청도 망하나요? 연합

시청도 망하나요? 연합

모라토리엄. ‘채무지급유예’라고도 불린다. 그 말이 3222억원의 초호화 청사를 지은 성남‘시’에서 튀어나왔다. ‘아방궁 같은 건물 때문에 시청이 문 닫나? 시가 망하면 우리는 어찌되나?’ 눈과 귀가 쏠렸다. 애향 시민들은 13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도 아껴뒀던 장롱 속 금가락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집값 걱정은 당연지사다. 호화 시장실을 도서관으로 만든 새 시장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이렇게 일주일을 달궜다. 사정이 다르지 않은 다른 지자체들의 명단이 입길에 오르내렸다. 누구는 “정치쇼”의 딱지를 붙였으며, 정부는 “엄살”이라고 빈정댔다. ‘전임시장의 흠집내기일까, 어려운 재정 상황을 시민에게 알리는 정당행위일까’라는 질문이 무르익기도 전에 누군가는 ‘무상급식 예산’을 문제 삼는 순발력을 선보였다. “무상급식은 한 해 평균 155억원이니 새 청사 건립에 비하면 정당한 예산”이라는 말은 공염불처럼 흩어졌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비난도 이어졌다. 기시감이 가득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분은 가만히 웃으시더라.” 알 듯 모를 듯 모나리자를 방불하는 표정과 ‘쁘띠거니’라는 별칭으로 늘 팬심을 외면치 않으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오랜만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7월15일 서울 한남동 자신의 집(삼성 승지원) 앞마당에 휴대전화, 아파트, 항공기, 쏘·맥(소주·맥주), 놀이동산, (동네 구멍가게까지 노리는) 마트의 회장님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다. “우리의 회장님이 되어주세요!” 누군가는 외쳤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고 누군가가 전했다). 침묵이 흘렀고…, 그분은 말없이 가만히 웃으셨다. 미소는 계속됐다. “겨울올림픽 때문에 얼마나 바쁘신 줄 모르는 거니!” 다시 누군가가 외쳤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그리 급한 거니!” 또 누군가가 외쳤다. 그분은 여전히 가만히 웃으셨다. 웃기만 해도 심중을 알아차리는 이들의 모임. 그들만의 염화미소 세리머니에 다음날 언론은 일제히 “그 미소는 전경련 회장직 고사를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올림픽 삐끗하면 그 미소는 어떻게 되는 거니? 급하긴 급한 거니? 그때도 미소만 날리는 거니?’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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