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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아기 만들기 대작전



‘아이 없이는 살아도 음주 향락 없이는 못 살 인간’이 어떻게 술을 끊고 늦둥이를 갖게 되었는가
등록 2010-06-09 21:34 수정 2020-05-03 04:26
임산부가 많이 드나드는 카페의 ‘난임 질문방’에는 ‘귀한’ 아기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

임산부가 많이 드나드는 카페의 ‘난임 질문방’에는 ‘귀한’ 아기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

내 아이는 귀한 아기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냐고? 정정. 내 아이는 비싼 아기다. 병원에 비싼 돈 내고 데려온 아이다. 아, 물론 사왔을 리는 없고. 한마디로 우리 아이는 남녀 간 충동적 열정의 결과물이 아니라 첨단과학의 총아, 시험관아기라는 말이다.

남들은(특히 연예인들은!) 혼전에 서로 눈만 찡끗해도 턱턱 아기가 생기던데, 무려 6년을 기다려야 했다. 아이 낳는 게 무슨 사법시험도 아니고 왜 나만 이렇게 어려울까, 분하고 억울한 마음도 많았지만 최근 임산부가 많이 드나드는 카페에 ‘난임 질문방’이 따로 생긴 걸 보면 이 ‘귀한’ 아기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진 것 같다.

입으로는 항상 앞서가는 척하지만 평균적인 삶을 추구해온 나는 결혼하고 반년 정도가 지난 뒤부터 아이를 기다려왔다. 쉽게 아이가 생기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두 언니도 결혼 뒤 1~2년이 지난 다음 좋은 약이라는 약은 다 먹고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긋하게 기다린 게 2년. 하지만 서른다섯을 넘기고 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친한 친구들이 줄줄이 아이를 낳은 것도 그즈음이다.

엄마의 권유로 난임 치료 전문병원 문을 두드렸다. 검사 결과는 남편도 나도 정상. 뭔가 문제가 있으면 치료라도 하겠지만 난임의 대부분은 이렇게 원인 불명이다. 임신 날짜를 받는 배란일 확인, 배란 유도 등의 가벼운 시도를 한두 달 한 뒤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데, 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는 다르다. 인공수정은 정액에서 정제한 정자를 자궁 속으로 투입하는 시술. 간단히 말해, 전후 과정 복잡미묘한 섹스를 임신에 초점을 맞춰 병원이 대신 해주는 거다. 시험관 시술에 비해 절차도 간단하고 비용도 얼마 들지 않는다. 결과는 실패. 병원이 멍석을 깔아주면 정자들과 난자가 제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정자·난자도 주인 캐릭터를 닮았는지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었다.

보통 난임 치료의 순서는 배란을 후방 지원 하는 정도의 자연임신 시도 서너 번에 인공수정 삼세판, 그다음 시험관 시술로 넘어간다. 그런데 인공수정이 두 번 실패한 뒤 나는 시도를 중단했다. 실패를 확인한 뒤의 좌절감이란 입시 실패의 좌절감보다 더 컸다. 게다가 인공수정 실패 뒤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되면 황우석 사태 때 난리 났던 그 공포의 난자 채취를 해야 하니 무서워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내가 눈물로 매일밤을 지새웠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사실 내가 난임으로 고민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평소 나는 ‘애 없이는 살아도 음주 향락 없이는 못 살 인간’의 이미지가 강고했으니 어디다 하소연하기도 쑥스러운 형국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몸 만들기는 그야말로 요원했다. 사무실 분위기 저해는 참아도 술자리 분위기 저해는 못 참는 내가 ‘남들 다 갖는’ 애 만든다고 돌아오는 술잔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 어처구니없게도 술 때문에 아기 만들기가 더더욱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해 초, 드디어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마흔 안에 ‘쇼부’를 쳐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늦둥이 시대라지만 마흔 넘어 첫애를 낳을 엄두는 안 났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한두 번 실패는 접고 들어가자 싶었다. 최종 실패로 판명나도 안 해보고 망설이는 것보다는 질러보는 게 낫지 않겠나. 시험관 시술의 경우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비용이 반액 지원된다는 소식도 힘이 됐다.

다시 한번의 인공수정 실패 뒤 시험관 시술에 들어갔다. 몸에 무리가 가는 과정이라 주변에 양해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격려하면서도 아쉬워했다. 내가 빠진 술자리는 붕어가 든 붕어빵보다 맛없다며 누군가는 진심으로 슬퍼했고, 누군가는 사악하게 술잔을 내 앞으로 밀어넣기도 했다.

이 집요한 사탄의 유혹을 떨치고 밀어붙인 시험관아기 첫 시술에서 우리 아기가 만들어졌다. 시술 뒤 피검사 수치를 전화로 확인하던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떨리는 날이었다. 그리고 1년 뒤, 출산휴가를 내고 육아에 분투하는 나에게 박아무개 기자는 술만 먹으면 전화해 애달픈 목소리로 하소연한다. “은형아, 너 없는 술자리는 너무 재미없어(글썽글썽)” 나를 (술자리에서만) 성원해주는 분들께 알린다. 1년만 기다리시라. ‘귀한’ 아기 젖 떼고 아일비백하련다.

김은형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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