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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센서’를 아십니까



아기들에게만 있는 제6의 감각,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가장 무서운 영화 ‘식스센스-유아편’
등록 2010-05-26 20:42 수정 2020-05-03 04:26
파김치가 되도록 아기를 얼러 겨우 재우기에 성공. 그러나 눕히기만 하면 아기는 당장 잠을 깨고 운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

파김치가 되도록 아기를 얼러 겨우 재우기에 성공. 그러나 눕히기만 하면 아기는 당장 잠을 깨고 운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

식스센스. 이것은 영화 제목이 아니다. 어른들에게는 없고 아기들에게만 있는 제6의 감각이다. 아하~ 모로반사?(갓난아기들이 놀라면 껴안은 듯이 팔을 벌리는 행동) 바빈스키 반사?(아기의 발바닥을 간질이면 발가락을 쭉 펴는 행동) 아는 척하지 마시라. 이른바 ‘등센서’라고도 부르는 이 감각은 어느 육아서적이나 의학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갓난아기를 키우는 엄마들만이 알고 있는, 영화 보다 458배가량 공포스러운 아기들의 감각이다.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영화적으로 ‘등센서’에 대해서 설명해보자.

초저녁부터 잠투정으로 징징거리고 떼쓰는 아기를 어르고 안고 업고 (흔들침대 등에) 태우고 흔들며 달래다가 파김치가 될 무렵 가까스로 아기의 눈을 감기는 데 성공한다. 조심조심 아기를 자리에 눕히고 살금살금 나오는데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조용히 고개를 돌린 순간 ‘누가 잔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짝거리는 아기의 눈과 마주친다. 그리고 폭발하는 울음. 등이 바닥에만 닿으면 아기가 뒤집어지는 등센서가 작동한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아기를 안고 어르는 작업이 시작된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어렵사리 잠이 든 아기를 눕히는 순간, 그러니까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또다시 반짝 떠지는 눈, 그리고 터지는 울음소리. 다시 안고 눕히고 눈뜨고… 도돌이표를 따라 무한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둥근 해가 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가장 무서운 영화 ‘식스센스-유아편’은 이렇게 완성된다.

태어난 직후에는 밤에 4시간 이상 자면서 신생아답지 않게 성숙한 면모를 보이던 아이에게도 한 달이 지나면서 예의 등센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안고 있을 때는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와도,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혀도, 벨소리가 울려도 태연하게 자던 아이가 눕기만 하면 인형처럼 눈을 반짝 떴다. 누가 아기의 눈빛이 사랑스럽다고 했는가.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반짝 떠지는 아기의 눈을 보면 오래전 봤던 공포영화의 마지막 장면, 악마가 빙의한 주인공의 파란 눈이 섬뜩하게 떠지던 모습이 생각났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건 등센서는 진화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공포영화를 찍어도 속편이 8편 정도까지는 나올 수 있을 분량이다. 1편에서는 눕히고 나서야 작동하던 공포의 등센서가 2편에서는 눕히기 위해 몸만 수그려도 작동하는 수준이 된다. 그 다음편에서는 아기를 안고 서 있다가 의자에만 앉아도 난리가 나고, 그 다음편에서는 아기를 안은 채로 걸어다니다가 서기만 해도 발악을 하는 경지에 오른다. 최종편? 아마도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가 눕혀야겠다, 또는 눕히고 싶다는 생각만 떠올려도 목청 터져라 곡소리가 울려퍼지는 등센서의 초능력화가 될 것이다.

많은 반사 행동들이 몇 개월에서 몇 년 사이에 사라지는 것처럼 등센서도 언젠가는 작동을 멈춘다.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 기능으로 변신한다. 생각해보라. 우리 어른들의 등은 평소 얼마나 간절히 바닥을 동경하는가. 한번 바닥에 붙으면 좀처럼 떼기가 힘들어 아침마다 얼마나 힘이 드는가 말이다. 아무튼 아기 등센서의 공격에 지친 엄마들에게는 언제쯤 이것이 작동을 멈추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예의 엄마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백일의 기적’을 기대하란다. 백일쯤 되면 조금 더 인간에게 가까워진다- 잘 때 자고 먹을 때 먹는다- 는 뜻이다. 요즘 등센서 필살기인 포대기로 아기 업기에 매진하는 친정엄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답했다. “웃기고 있네. 내가 너를 업은 채로 엎드려 잔 게 돌 때까지다.”

김은형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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