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가졌을 때 가장 먼저 준비하는 건 출산·육아 관련 책들이다. 나 역시 출산 전 “아이 키울 때는 읽을 시간이 없다”며 친구가 사준 책들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나름의 육아 원칙도 세웠다.
전에 침대 머리맡을 차지하던 책들은 육아 이력만 6개월을 코앞에 둔 지금 후미진 방구석으로 스리슬쩍 자리이동을 했다. 읽을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책에서 강조하는 육아법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나의 방식에 마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먼저 육아서들이 가장 많이 할애하고 있는 수유와 수면 부분. 일전에 모유수유 실패기를 쓰면서 글로 배운 모유수유의 난점을 토로한 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묘하게 역전됐다. 백일이 지나 감기에 걸린 아이가 젖병을 거부하면서 얼떨결에 ‘완모’(완전 모유수유)의 꿈을 이루게 됐다. 이것으로 해피엔딩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책에서는 수유와 수면을 분리하라고 조언하건만 아이는 밤이고 낮이고 젖을 물지 않으면 절대로 잠들지 않았다. 책에서 배운 대로 칭얼대는 아이를 눕혀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재우려고 할라치면 ‘응애’도 아니고 ‘우왕’으로 시작되는 엄청난 데시벨의 포효를 시작한다. 참다 못한 나는 젖을 물린다. 이럴 때 그렇게 좋다는 모유를 주는 엄마로서의 자긍심은 지하 암반수 아래로 파묻히고 꼭 우는 아이에게 ‘추파춥스’를 물리는 나쁜 엄마가 된 기분이다. 잘 때뿐만 아니라 아이가 떼만 쓰면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젖을 물린다. 이러다가 진짜 나중에 사탕으로 아이 ‘입막음’을 하는 엄마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카시트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기 엄마들의 바이블이라고 할 만한 에는 출산하고 퇴원할 때부터 카시트를 사용하라고 단호하게 적혀 있건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이렇게 어린 아기를 어떻게 카시트에 놓냐”며 말리는 친정엄마의 과실도 없지는 않다. 그렇게 몇 번 할머니 품에서 차를 탄 경험에 요령이 생겼는지 종종, 실은 자주 아이가 카시트만 타면 땡깡이다. 처음엔 책에 나온 것처럼 울든지 말든지 하면서 내버려두다가 저렇게 계속 두면 아기와 차와 내가 동시에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혼란과 공포 속에서 카시트의 버클을 풀곤 한다. 이러다가 아기 업고 운전하는 막장 스릴러 엄마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이렇게 사소한(?) 훈련도 실패하는 엄마로서 육아철학서를 보는 마음은 더 괴롭다. 물론 ‘우리 아이 영재’ ‘일류’ 어쩌고 하는 책들은 보지 않는다. 몇 권 읽은 나름의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책들의 요지는 이렇다. 믿어주고 자율적으로 키웠더니 알아서 성공하더라. 우리 언니가 믿어준 조카는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시험 성적은 엉망진창이던데 말이다. 차라리 세 살에 한글을 가르치고 네 살에 영어를 가르치고 이런 조언이라면 따라 할 수나 있어서 편할 텐데, 믿었더니 잘하더라는 메시지는 정말이지 선문답 같다. 기지도 못하는 작은 아이에게 수면 훈련 하나도 제대로 못 시키는 내가 과연 믿음만으로 다 큰 아들에게 “엄마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엄마가 잘 때마다 젖 줘서 내가 이렇게 이빨이 썩은 거 아녜요”라고 원망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와 육아서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에는 아기에게 수면 교육을 하기 위해 누워서 스스로 잠들 때까지 울면 안았다 그치면 눕혔다를 반복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모로 일했던 저자는 실제로 그것을 수십 번 반복한 적이 많다고 한다. 번번이 포기하며 기가 꺾인 나는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친구에게 물었다. “그 저자 암으로 죽었잖아.” 심심한 조의를 표하면서도 뭔가 위로가 된다. 그래도 아기 재우다가 스트레스로 암 걸리는 것보다는 낫잖아?
김은형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