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 프로그램 에서 중국의 ‘슈퍼베이비’들이 등장했다. 프로그램 성격상 해외 토픽 정도의 가벼운 톤으로 만든 코너였는데, 거기 나온 40kg의 두 돌 아기 생각에 잠을 설쳤다. 저렇게 심한 소아비만으로 자라면 어릴 때부터 고혈압·당뇨 등 성인병으로 고생할 텐데,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놀림당할 텐데, 떼를 쓴다고 부모라는 작자들이 저런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다니 아동학대 아니야? 웃자고 만든 프로에 죽자고 흥분한 꼴이었다.
예전부터 결혼을 해야 진짜 어른 된다, 아이를 낳아봐야 철든다 따위의 충고는 믿지도 않았거니와 가장 싫어하는 유의 훈계였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뼈저리게 공감하게 된 것 하나는 내 자식 낳아봐야 남의 자식 귀한 줄 안다는 말이다. 어디서 아프거나 부모가 없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를 보거나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듣기만 해도 영 마음이 심란하다.
비단 남의 자식을 볼 때만 드는 생각이 아니다. 내 아이를 안고 얼러줄 때 깔깔거리는 웃음을 보면 온몸이 녹아버릴 만큼 행복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진다. 내 다리나 배 위에 자기 다리를 턱 하니 올려놓고 코 자는 아기의 얼굴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웃을 수 있게 안아주고 얼러줄 누군가가 없는 아이들이 생각나고, 잘 때 통통하고 짧은 다리를 올려놓을 따뜻한 체온이 결핍돼 있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갑자기 왜 이렇게 섬세한 인격의 소유자가 됐느냐고? 가끔 교회에 가게 되면 세상의 모든 엄마 없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나를 보고 내가 소스라치게 놀랄 지경이다. 이것도 수유하는 여성이 겪는 호르몬 변화 때문인가 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애 낳고 나니까 힘들고 어려운 아이들 이야기만 들어도 목이 멘다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아이를 낳기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키우면서 새삼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아기는 너무나 약하고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없으면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들고(이게 최대 미스터리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도 씻을 수 없고 하다못해 콧구멍을 막고 있는 코딱지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작은 인간. 발악을 하며 떼쓰면 정말 한 대 패주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조차 자기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아기의 아주 작은 반응일 뿐이다. 지금까지 연민이란 나이 든 노부부 사이에서만 오가는 뜨뜻미지근한 감정인 줄 알았는데 아기를 보면서도 불쑥불쑥 찾아온다. 나 없으면 이거 불쌍해서 어떡해. 그러니 남의 자식이라도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결핍돼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 한구석이 따끔따끔해올 수밖에 없다.
엄마가 되면서 훌륭해지는 점 딱 한 가지는 이처럼 내 아이와 같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 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이렇던 엄마들 상당수가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아이만’주의에 무섭게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중학교 1학년인 조카가 방학 때 학원을 다니고 싶은데 어디에 등록할지 모르겠다기에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나를 보며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이 싱긋 웃는다. “물어봐도 절대 안 가르쳐줘요. ‘베프’라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를 잡도리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집 앞에 장애인학교 등이 들어올까봐 데모에 나서는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내 새끼 귀하면 남의 새끼 귀한 줄도 아는 게 엄마의 본성일 텐데, 더 약하거나 아픈 아이를 보면서 드는 연민도 경쟁사회에서는 말라버리는 것일까.
엄마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아기는 자란다. 자라야 할 건 아기만이 아니다. 엄마도 엄마로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자신의 아기처럼 약한 존재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내 새끼처럼 보듬어주는 일이 아닐까.
김은형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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