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죽은 줄 알았던 블로그가 아직 살아 있다. 2006년 4월 이후 새 글이 없다. 관리자는 삭제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을 것 같다. 불쌍한 내 블로그. 부족한 주인 만나 썰렁했던 블로그에 그동안 밀린 정까지 퍼부어줘야겠다.
핑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9월부터 ‘기자질’을 잠시 중단했다. 한겨레신문사 노조위원장(정확한 명칭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 지부장)과 우리사주조합장을 맡아 2년 남짓 복무하고, 새해가 되어 다시 기자로 복귀했다. 그사이 내가 좋아하던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다. 용산에서 참사가 있었다. 언론악법 문제로 언론노조가 총파업을 세 차례나 벌였다(결국 한나라당은 강행 처리를 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 일사부재의·대리투표 등 처리 절차를 어겨 위법하다면서도 결과는 유효하다는 상식 밖의 결정을 했다). 이 정부 들어 진보언론들이 대체로 위기를 맞고 있으니 블로그의 글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합원들과는 전자우편이나 노조 소식지로, 시민들과는 거리에서 직접 만나는 방식이 블로그를 통한 소통보다 유용했다.
또 전문 블로거가 아닌 이상 정치라는 소재 자체가 불편할 때가 있다(필자는 정치팀장 출신이며 다시 정치팀장을 맡았다- 편집자). 지면에 실리는 기사보다는 덜 긴장하게 마련이어서 게시판이나 블로그의 글로 인해 ‘필화’를 겪기도 한다. 느긋한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기 어렵다. 머릿속 사전검열기가 끊임없이 작동한다. ‘이런 얘기 쓰면 재밌을 텐데’ 하다가도, 익명까지도 ‘네티즌 수사대’가 다 밝혀내고 말 것이므로 취재원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노트북을 덮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핑계 가짓수는 이 지면 끝까지 늘릴 수도 있으나, 그래도 치명적인 결함은 가리지 못한다. 게으름이다. 능력이다. 사실 느긋하게 마감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매번 쫓기다 지각하기 일쑤였다. 기사도 제대로 못 쓰면서 블로그에서 놀 만한 여유와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없는 사이 이런 코너가 생겼으니 이젠 블로그에 쓰지 않을 도리가 없게 생겼다.
차라리 잘됐다 싶다. 막 군에서 제대한 복학생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처럼 내 몸에 새 길을 내는 것도 방법이리라. 그래도 걱정이다. 취재하는 법, 기사 작성법 다 가물가물한데 다음주부터는 현장 투입이다. 혹자는 자전거 타기나 수영과 비슷해서 잠시 손을 놓았더라도 하다 보면 금방 적응할 것이라고 위로한다. 하지만 낯설게 느껴진다.
언론 노동자인 기자. 본질의 변함 없이 중심축을 앞에서 뒤로 옮기는 정도인데도 어질어질하다. 멈칫하게 된다. 그래서 새해에는 즐겨먹는 음료 이름처럼 살려고 한다. 처음처럼. 잘 적응해서 좋은 기자로 살아남는 게 올해 목표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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