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문화방송 제공
‘걸리버’를 아시는가. ‘안 터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휴대전화 단말기 걸리버가 내세운 건 통화 품질이었다. 지하철은 물론이고 반지하만 내려가도 휴대전화 단말기에 표시되는 수신감도 안테나가 뚝뚝 떨어져 짜증을 유발하기 일쑤였다. 걸리버의 광고 카피는 이런 불만을 파고들어 외쳤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걸면 걸리는, 걸리버~!”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사죄하시오”를 부르짖다 경호원들에게 끌려갔던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장례식 방해죄’로 기소됐다. 백 의원은 당시 장례위원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도 엄연히 ‘상주’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검찰은 장례식장에서 울부짖은 상주에게 장례식 방해 혐의를 적용했다는 말씀. 따지고 보면 여느 장례식에서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대한민국 검찰은 여기서도 ‘걸면 걸리는’ 범죄를 포착해냈다. 검찰이 걸리버, 아니 대인배라는 뜻이다. 괜히 쓸데없이 ‘걸지’ 마시길.
이 발표한 2009년의 사자성어는 ‘방기곡경’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이 아닌 샛길과 굽은 길을 뜻한다.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 추진, 언론관련법 처리 등 굵직한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타협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한 말이다. 부글부글 생각은 조금 다르다. 2009년 한 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자성어는 ‘빵꾸똥꾸’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서거해야 했던 현실 자체가 ‘빵꾸똥꾸’다.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 언론관련법 등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을 끈질기게 시도하는 여권의 행태가 ‘빵꾸똥꾸’다. 무엇보다 ‘빵꾸똥꾸’를 ‘빵꾸똥꾸’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이 ‘빵꾸똥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문화방송 시트콤 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가했다. 아역 출연자 해리가 쓰는 ‘빵꾸똥꾸’라는 표현에 권고 조치를 내린 것. ‘빵꾸똥꾸’ 등 해리가 쓰는 용어가 ‘폭력적’이라는 게 방통위의 지적이다. 앗, 그러고 보니 방.통..위! 어딘지 모르게 ‘빵’꾸‘똥’꾸의 흔적이?!(잘못 걸었다면 죄송!)
당신의 2010년 새해 다짐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년 내내 ‘걸면’ 안 되는 분께 잘못 ‘걸었던’ 과오를 반성한다. 김종철 발행인께 지면을 빌려 사과드린다. 휴대전화에 입력된 ‘김종철 발행인’을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으로 착각해 전화를 잘못 걸었던 적이 여러 차례였다. 부글부글을 마감 중인 오늘(2009년 12월24일)도 걸었다. 대뜸 “대변인님~!”을 외치는 실수에 짜증날 법도 한데, 그때마다 온화한 목소리로 “대변인 아닙니다”라고 바로잡아주신 김 발행인께 감사드린다. 김종철 대변인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 김종철 기자시죠”라고 묻는 전화를 자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모자란 사람들이 잘못 ‘걸어서’ 피해 보는 이 땅의 모든 ‘김종철들’께 말씀드린다. “새해에는 쓸데없이 ‘걸지’ 않겠습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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