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임지선’이다. 임씨 성을 가진 아버지 밑에 태어나 ‘임’을 얻었고 돌림자로 ‘선’을 얻었고 할아버지께서 ‘지’를 선택하시었다. 그리하여 나는 ‘임지선’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름이 특이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예를 들어 내 친구 이름은 ‘배하나’였는데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한 번에 외웠다. 배가 하나구나, 하하, 하고 말이다. 흔한 내 이름은 선생님조차 헷갈리곤 했다. ‘배하나’란 이름은 훗날 영어 이름 ‘one pear’로 발전했다. 외국인 친구들도 그의 이름을 쉽게 외웠다.
그래서 하루는 청소를 하고 있는 엄마 옆에 가서 “왜 내 이름은 ‘지선’이라 지었냐”고 따졌다. 11살 때의 일이다. 걸레질을 하느라 땀을 흘리던 엄마는 무심코 “내가 ‘선지’국을 좋아해서 그냥 거꾸로 ‘지선’이라 지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대충 지은 이름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오랫동안, 특이한 이름은 나의 로망이었다.
며칠 전,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SBS 수목 드라마 을 보는데 배우 차승원이 분한 39살 부시장, 주인공의 이름이 ‘조국’인 것이다! 어머,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와 이름이 같잖아. 어쩜, 흔한 이름도 아닌데. 드라마 작가가 조국 교수를 개인적으로 아나? 차승원씨는 조국 교수를 만나봤으려나? 그럼 조국 교수도 차승원씨처럼 선이 굵고 눈이 부리부리하다는 걸 알고 있겠지?
얼마 전 한 보고서가 ‘차기 서울시장감’으로 조국 교수를 물망에 올렸기에, 거참 예사롭지 않은 일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조국 교수와 통화를 하게 됐기에 물어보고 말았다. 드라마 보셨어요, 라고.
조국 교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나도 그 소식(드라마 주인공 이름이 조국이라는)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명박’이란 이름을 드라마 주인공으로는 안 쓰지 않냐, 나 같은 경우 정말 특이한 이름인데 드라마에 그렇게 쓰이다니,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을 수가 있냐, 이건 인격권 침해다….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온 조국 교수의 말에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고 할까. 아무튼 지금, 포털 사이트에 ‘조국’을 검색해보면 인물정보에는 조국 교수가 뜨고, 뉴스에는 드라마 의 조국 부시장이 뜬다. 이럴 땐 흔한 ‘지선이’가 낫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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