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가 세상을 바꾼다.’ 은 지난 1월 중순부터 ‘세상을 바꾸는 행복한 상상-Why Not’ 연재를 통해 공정무역·공정여행·로컬푸드 운동을 차례로 보도하면서, 윤리적 소비와 사회적 연대를 이야기했다. ‘공정’이란 열쇳말로 꾸려온 연재의 첫 번째 시즌을 마치면서, 착한 소비를 확산시킬 방법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윤리적 소비와 사회적 기업을 연구하고 있는 한겨레경제연구소의 이원재 소장, 생협 조직을 통해 공정무역을 알리고 있는 아이쿱 생협연합회의 오항식 사무처장,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국제민주연대의 김경 간사가 4월22일 한겨레신문사 3층 한겨레경제연구소 회의실에서 만났다.
오항식 아이쿱 생협연합회 사무처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김경 국제민주연대 간사(왼쪽부터)가 4월22일 한겨레경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윤리적 소비’를 놓고 좌담을 하고 있다.
사회: 공정무역과 공정여행 등 이른바 ‘착한 소비’를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오항식(이하 오):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소비자로서의 자부심이 있다. 생협에서 판매하는 다른 제품을 홍보할 땐 그렇지 않았는데, 지난해 3월부터 학교 앞 등에서 동티모르 커피와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공정무역 제품을 홍보할 땐 조합원들이 흔쾌히 자원활동에 나섰다. 학부모 모임에 가서 적극적으로 공정무역을 홍보하는 회원도 있다. 제품 홍보가 아니라 ‘떳떳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나.
김경(이하 김): 소비를 하면서 ‘착한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여행상품의 가격이 항공료보다 싸다는 건 누군가 착취를 당한다는 얘기다. 공정여행은 내가 쓰는 돈이 현지 주민들의 수입으로 돌아가도록 하자는 건데, 중국 윈난성 1차 공정여행 참가자들은 그렇게 현지 주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준비돼 있었다. 윈난성의 역사·문화·자연과 댐 건설 문제 등을 공부하는 사전교육 덕분인지는 몰라도. 현지 가이드는 단체여행객의 안하무인격 행동이나 갖은 추태에 환멸을 느껴 일을 그만뒀다는 사람이었는데, 마지막에 “이런 여행객은 처음이다.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이더라. 1차 참가자들 중엔 2차 여행 사전설명회 때 자발적으로 참석해 ‘간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회: 그런 착한 소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돈을 소비하면서 산다. 또 어느 한 부분에서는 생산을 한다. 우리의 생활이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라면 착한 소비를 하는 건 결국 내가 착한 상태에서 생산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고, 세상 전체를 착한 환경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오: 어떤 빵을 먹느냐, 어떤 커피를 먹느냐에 따라 생산자의 근본적인 삶이 변한다. 그런 가치에 동의한다면, 커피 한잔을 마시더라도 공정무역 커피라는 그 자체가 소비자에겐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사회: 최근 몇 년 동안 ‘윤리적 소비’가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 정착되진 못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오: 사실 사회적으로 얘기된 지 2~3년밖에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산 속도는 빠르다고 보는 게 맞다. 물론, 공정무역 제품이 대중적으로 소비될 기반이 아직 넓지는 않다. 영국의 경우 생협에서 다루는 상품 가운데 20% 정도가 공정무역 제품인데, 한국에선 아직 품목이 많지 않다. 여기엔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제품까지 수입해와야 하느냐는 정서적인 거부감도 깔려 있다.
김: 공정여행을 기획하면서 고민한 건 어떤 내용을 내놓을 것이냐였다.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 공정여행일 수도 있고, 쇼핑센터를 따라다니지 않는 여행상품이 공정여행일 수도 있다. 여행경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항공료인데, 화석연료를 사용해 여행을 가는 게 공정한 것이냐는 문제제기도 있을 수 있다. 여행을 가서도 마지막 날 토론이 벌어졌고, 이런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원재(이하 이): 윤리적 소비는 주류가 아니라 변방이고, 운동의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거다.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건 공정한 상품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논쟁으로 경쟁하기보다, 모든 제품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고 소비자를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 윤리적 소비가 확산되려면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까.
이: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는데, 소비는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다. 제품을 구매할 땐 주인의 친절도, 가게의 청결함 등 제품과 관련한 종합적인 환경을 고려한다. 가격이 부각된 건 소비자의 ‘가격’ 욕구에 맞춰 대형 할인점이라는 공급자가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윤리적 소비도 마찬가지다. 소비 욕구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만족감이나 ‘선함’이 깔려 있다.
공정무역 등 윤리적 소비 관련 업체들이 더 분발해 일반 기업과 경쟁할 수 있어야 소비자도 바뀔 수 있다. 공급 주체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언론도 다루게 된다. 우선 ‘접점’, 즉 살 수 있는 곳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산업 전체적으로 적절한 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착한 초콜릿’이 히트를 쳤지만, 그 이후 전략은 없었다. 예를 들어,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공급자가 영리적으로 만든 건데 왜 사회적인 이유로 그런 날을 못 만드나. 크리스마스에 대중적인 스타를 내세워 공정무역 공산품을 선물하자는 캠페인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또 사람들한테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공정무역이 활성화된 건 원래 영국 사람이나 기업이 착해서가 아니라, 시민운동을 통해 압력을 줬기 때문이다.
오: 공정무역 제품의 품질과 가격이 소비자의 동의를 받을 만한 수준이 돼야 한다. 소비자도 공정무역 초콜릿이 시중 초콜릿보다 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두 배씩 비싸도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조사를 해보니, 시중 가격보다 20~30% 정도 높다면 구매할 용의가 있다고 나왔다. 공정무역이 운동으로 이뤄지다 보니 질이 낮을 거라는 인식도 있는데 그것도 바꿔야 한다.
김: 가치가 먼저 소비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소비자가 알고 있다는 건 중요한 문제다. 그래야 그런 상품들이 내 앞에 올 때 알아볼 수 있다. 윤리적 소비를 알리는 언론 보도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회: 이런 윤리적 소비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세계경제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 세계경제 상황은 미래로부터 돈을 빌려다 써서 갚을 일만 남은 거다. 이젠 지금까지 소비한 만큼 소비할 수도 없고, 예전만큼 임금을 받을 수도 없다.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전세계가 비참해져야 하는 거다. 비참해지지 않을 방법은 돈이 아니라 다른 데서 만족을 찾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중심에 놓은 경제활동과 소비가 ‘돈’이라는 가치를 대체해야 우리의 행복이 유지된다.
오: 글로벌화된 식품시장에서 발생하는 식품안전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윤리적 소비는 발전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윤리적 소비라는 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하느냐의 문제인데, 식품의 글로벌화는 소비자가 안전성이 인증된 상품을 구매하도록 몰아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a href=mailto:yws@hani.co.kr>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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