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호랑이를 그리다가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개 그림이 되고 만 격.”
2009년 토정비결은 안 보느니만 못했다. 인터넷에서 본 무료 토정비결엔 ‘저주’가 내려 있었다. 열두 달의 신수를 종합해놓은 전체운에서 희망적인 문구라고는 “가을 석 달간의 운세는 진행하는 일이 순조로우며 쉽게 풀려 얻는 것이 많을 것”뿐이었다. 온통 뭐 하지 말라는 경고문투성이의 토정비결을 보니 겁이 덜컥 났다. 새 일을 시작할 때 이런 불길한 운세라니.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생전 처음으로 점집을 찾아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주변 사람들을 취재하니 각종 도사들을 추천받을 수 있었다. ‘제물포 도사’ ‘홍대 타로카드 언니’ 등을 제치고 선택받은 이는 ‘까치산 도사’. 서울 지하철 5호선 까치산역에 있다는 도사를 추천해준 이는 점집이 늘 붐빈다며 주의점을 알려줬다. 도사님이 오후에는 신력이 떨어지니 아침 일찍 찾아가라는 것. 혼잡한 주말을 피해 평일 오전 일찍 길을 나섰다. 까치산 도사도 사람인데 한 해 운이 나빠도 인터넷 사주처럼 절망적으로 말해주진 않겠지. 점집을 찾아가는 1시간 동안 까치산 도사는 내게 하느님이었다.
‘잠정 휴업’.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날은 추워 콧물은 질질 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도사님이 건강이 나빠져 봄까지 휴업한대요”라고 말해줬다. 친구에게 넋두리 문자를 날렸더니 답문이 돌아왔다. “특별히 해 뜬 날은 없었잖아? ㅋㅋ 좌절 금지!”
경기 불황의 그늘이 깊어가면서 점집들이 호황이란다. 취업 걱정을 하는 20대 백수들이 주로 찾는다는데 덩달아 온라인 운세 사이트도 북적인다고 한다. 영화 예매하러 들어간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도 무료 운세 배너가 나를 유혹했다. 클릭(무료라더니 뻥이네). 영화표 예매에 쓸 포인트로 쌓은 강냉이 2천 개를 몽땅 털어놓고 운세를 봤다. 결과는? “땅속에 심은 씨앗이 지상으로 돋아나는 해”란다. 얏호! 그런데 생년월일시를 똑같이 넣었는데 왜 사주 결과가 다르지? 끙. 경기 불황 속에도 뜨는 게 있다더니, 위로와 희망을 미끼로 운세 사이트만 대목을 맞았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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