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김수현 전문위원
재수를 하여 학교에 들어간 뒤 동기들과의 호칭 문제는 ‘문제’다. 적어도 12년 동안은 겪어보지 못한 혼란이다. 나이를 챙기자니 쩨쩨해지고 내팽개치자니 눈앞이 삼삼해진다. 말을 트고 나서도 이름 뒤에 붙는 ‘경칭’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MT에서 모든 동기에게 호기롭게 ‘경칭 생략’을 허했다. 모든 게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어느 날 게시판에 ‘MT 사진 찾아가기’ 공고가 ‘경칭 생략’형으로 정답게 붙어 있는 것을 보고는, 왠지 참을 수 없어 몰래 ‘경칭’을 볼펜으로 써넣고 말았다. 쫀쫀함은 바로 발각되었다. 이런 작은 것까지도 ‘지위’와 관련되는 한은 버리기가 어렵다. ‘호텔형 모텔’에서도 형은 모텔, 동생은 호텔인 것이다.
e지원 관련해서 한 블로거가 쓴 글은 ‘지위’와 쫀쫀함의 관계를 거론한다. e지원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구절 중 그 블로거의 눈에 띈 것은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릿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였다. 그의 설명은 계속된다. “청와대 책상에서 쉽게 검색해서 얻어낸 정보들을 퇴직 뒤엔 쉽게 얻기 어려워질 것 같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걸 급한 대로 다 복사해서 집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아무리 전 대통령이라 해도 중요 자료는 정해진 곳에 방문해 열람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열람’이 그저 차별이고 불편이라니 그럼 세상에 왜 ‘열람’이란 제도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 이 편지 구절은 노 전 대통령 쪽의 ‘열람권’이 제대로 보장될 때까지 사본을 갖고 있겠다, 하는 설명에 비춰봐도 맞지 않다. 문제는 ‘대통령’ 강조 구절에 있다.
“본인이 대통령을 했든 안 했든, 말 그대로 필요할 때마다 천릿길을 가서 열람을 해야 한다. 열람이란 제도는 ‘불편’을 통해서 정보를 보호하려는 수단인데 그 개념 자체를 이해 안 하고 자기의 불편함만을 토로하고 있는 셈이다.”
시골 ‘점방’의 재털이 앞에 담배를 꼬나물고 심상하게 앉아 있는 노 대통령의 ‘노간지’ 사진 아래 블로거들은 “눈물 난다”라고 썼다. 퇴임 뒤 고향에 돌아간 전직 대통령은 처음이었다. 고향의 노 대통령을 보고 네티즌들은 “2년2개월 군대 다녀와도 사회 적응이 힘든데, 퇴임한 지 일주일 만에 사회 적응 끝냈다”고도 했다. 그렇다. 이 모든 해석은 ‘시민’들의 것이었다. 착각도 있었다. ‘호텔형 모텔’은 결국 ‘모텔’인 거니까. 문제는 ‘전직 대통령’과 ‘시민’이라는 경계를 잘 넘나드는 것이다. ‘시민’으로서 해야 될 일을 ‘전직 대통령’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전직 대통령’이 할 일을 ‘시민’이라는 수사로 치장하지 않는 것. 그러나 문득 의미없다. 호텔도 모텔도 불도저 앞에서는 무너진다. 미묘한 문제를 ‘검찰수사’라는 식으로 해결하려는 ‘거대 권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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