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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평론과 오뎅 장사

등록 2008-07-23 00:00 수정 2020-05-02 04:25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참으로 신기하다. 물이 모이면 어느샌가 물이끼와 수초가 끼고, 그러면 어디선가 물고기도 모여든다. 2008년, 두 달간 밤마다 도심은 촛불로 환했고, 모여든 사람의 수가 몇만을 넘게 되자 어디선가 포장마차 아주머니들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오뎅을 팔았다. 나쁘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장사되어 좋고, 시위에 지친 사람들은 허기진 배 채워서 좋았으니까.

‘촛불 평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모양이다. 서점에 나온 대부분의 월간지·계간지마다 촛불 이야기로 그득하고, 모름지기 몇 몇 출판사에서는 책도 기획 중인 듯하다. 평론가들의 면면과 연령과 전공과 지적 배경도 시인에서 한국학자에 정치학자, 철학자, 문학평론가까지 제각각이며, 논지 또한 다양하다. 촛불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후퇴다 아니다 전진이다, 68혁명에 버금가는 대사건이다 아니다 아예 후천개벽의 시작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본격적 투쟁이다 아니다 몰계급적인 중산층의 운동이다, 집단 지성 혹은 다중 지성이다 아니다 애국주의와 ‘대중독재’의 준동 조짐도 있다 등등. 그런데 나는 경제학 공부의 버릇이 도져서인지, 이러한 담론들에 몰입을 못 느끼고 자꾸만 이것들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경로에 더욱 관심이 간다. 이러한 담론들은 진보 진영, 나아가 촛불에 모인 사람들을 시장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촛불로 오지 못하거나 않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있는 것일까.

촛불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출범 반년도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에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따끔히 알려주었고, 정권이 무리하게 추구하던 각종 정책들은 잠정적으로나마 철회되거나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촛불은 아직 결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권과 보수 세력의 온갖 공세에 직면하고 있으며 대중적으로 고립될 위험도 많이 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아직 분명치 않다. 이 상황에서 흔들리는 촛불을 다시 풍성하게 살려내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지난 15년간의 민주주의 발전을 한순간에 되돌려버리는 정권의 각종 공세를 구체적 사안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 촛불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와 바람이 어째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인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거기서 제기된 수많은 쟁점들을 각자의 전공과 공부를 살려 여러 각도에서 연구하고 논리를 개발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리고 촛불이 앞으로 더욱 전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실제적인 방안과 아이디어를 놓고 함께 머리를 짜야 한다.

지금 누가 ‘촛불 평론’을 필요로 하는가. 언젠가 필요할 때도 있겠으나, 지금 아직 촛불의 향방과 미래가 결판나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집회장에 모인 사람들 쪽이 아니라 그들을 보위하고 그들이 전진할 수 있도록 그 바깥쪽으로 외치는 소리다. 이러한 일들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들이 ‘촛불 평론’에 골몰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스스로 길을 또 터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다음 아고라에 올라오는 숱한 글들을 보라. 각자 머리를 짜내고 마음을 합쳐서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온갖 노력이 산더미로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거기에 ‘촛불 평론’은 낄 자리가 없다.

진보 지식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진보 운동에 복무하며 그것이 좀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사랑을 얻도록 설득하는 작업에 진력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진보 운동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글과 말과 책과 얼굴을 쏟아놓아 이름을 얻는 사람인가. 우리는 이번에 전자의 소중한 예들을 보았다. 우석균, 박상표 등은 각자의 오랜 고민과 연구와 열정을 살려 광우병의 진실을 호도하려는 여러 논리들을 철저히 논박했다. 송기호도 우리로서는 도무지 판별할 수 없는 국제무역과 협상의 온갖 세세한 쟁점들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협상의 진상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했다. 진중권, 정태인 등은 촛불에 모인 사람들의 뜨거운 숨결과 흐느낌과 좌절과 즐거움을 모두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글자 그대로 ‘몸빵’을 마다 않고 우리의 입과 귀가 돼주었다. 더 많은 진중권, 더 많은 송기호는 어디로 갔는가.

지금 ‘촛불 평론’이 뜬금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진정한 성격은 그것이 충분히 자라 무르익어 터진 뒤에만 밝혀진다’고 했고, 미네르바 여신의 부엉이는 해가 진 뒤에 날아간다고 했다. 지금 촛불은 무르익어 터지기는커녕 갓 피어난 어린 불꽃이어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어 그 아래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창 안간힘을 쓰고 있는 판이다. 오뎅 장사는 아주머니들로 족하다. 지식인들은 할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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