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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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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인

등록 2007-07-13 00:00 수정 2020-05-03 04:25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우리는 얼마나 거짓말을 할까?
문득 이런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668호 표지 제목을 ‘이명박의 거짓말’로 도전적으로 결정하고 나서입니다. 은 이 전 시장과 BBK 및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의혹을 둘러싼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내며 이 전 시장 발언의 진실성을 추적했습니다.
기실 우리의 일상은 거짓말의 연속일 겁니다. 거짓말은 불편한 상황을 피하는 달콤한 유혹이고, 일상을 빡빡하지 않게 만드는 윤활유일지 모릅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라인하르트는 에서 사람이 하루 평균 이런저런 거짓말을 200번은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의 주인공 변호사 플레처 리드처럼 단 하루라도 어느 곳에서든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면 삶은 악몽이자 고통일 겁니다. 진실로만 가득 찬 세상이 오죽 불편할 듯했으면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요.
그렇다고 누구든 거짓말을 밥 먹듯 해도 괜찮은 건 아닙니다. 특히나 입조심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소개합니다.
루이스 리비.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의 실세인 그는 지난 6월5일 미국 워싱턴 지방법원에서 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리비는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로, ‘딕 체니의 딕 체니’라 불릴 만큼 힘센 존재였습니다.
그런 리비를 감옥살이 신세로 만든 게 거짓말입니다. 그는 ‘리크 게이트’로 불린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누설 사건과 관련해, 연방수사국(FBI) 수사와 법정의 연방대배심에서 “비밀요원의 정체를 기자에게서 들었다”고 말해 스스로를 옭아맸습니다. 정보의 출처는 CIA로 판명났으니까요.
어쩌면 사소하게도 보이는 사안을 무겁게 단죄한 레기 월턴 판사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월턴 판사는 판결에서 “고위직 인사들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고위직 인사의 언행이 도덕성을 잃으면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고 질타했습니다.
꼭 리비까지 상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나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물러난 과정도 비슷합니다. 두 사람은 3·1절에 골프를 친 것이나 제자의 논문을 표절한 게 낙마의 제1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불거진 뒤 말을 바꾸고 오락가락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사건의 실체보다 부적절한 언행이 더 비판의 대상이 됐던 거지요.
고위 공직에 있거나, 그 자리에 오르려는 이라면 월턴 판사의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고위직 인사들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거짓말은 그런 ‘레드 라인’(금지선)을 넘어서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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