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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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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프러거티 친구들

등록 2007-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지난주에 네팔에 다녀왔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와 벅터푸르시 사이에 흐르는 모노호라 강변에는 ‘프러거티’라는 초라한 빈민촌이 있다. 프러거티는 ‘번영’을 뜻한다고 하는데 정작 마을 사정은 번영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가느다란 강줄기 옆으로 비닐 포대며 찢어진 박스와 다 부서진 벽돌로 쌓은 집이 700호가량 모여 있다.

국왕의 이름을 붙였다가 버리다

네팔은 지난 10여 년간 변혁을 꿈꾸며 민중봉기를 일으킨 마오(마오쩌둥주의자) 반군과 절대 권력을 꿈꾸던 국왕의 무력 충돌로 인해 심각한 내전을 겪었다. 내전 초기 반군은 은근한 민중의 지지를 받았으나 잦은 파업 동참 요구와 강제징집, 가혹한 혁명세 강탈로 인해 점차 원성을 사게 되었다. 네팔 민중은 한편으로는 혁명을 갈망하며 반군을 지지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반군의 횡포에 시달리며 피해다녀야 하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마을은, 내전이 극에 달하던 4~5년 전부터 반군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산간 지역 주민들이 강제징집을 피해 카트만두로 모여들면서 형성됐다. 시유지를 무단 점유한 것이니 언제 어떻게 강제로 철거당할지 몰라 주민들은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마을 이름이 본래부터 ‘프러거티’였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네팔 국왕의 이름인 ‘갸넨드라’를 마을 이름으로 쓰고 있었다. 갸넨드라는 마을 주민들이 심사숙고해서 지은 것으로, 적어도 국왕의 이름을 가진 마을을 강제로 뒤엎고 철거하지는 않겠지 하는 애절한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있었던 민주화 시위와 공산반군의 혁명투쟁이 일정 정도 승리해 국왕이 가졌던 부와 권력을 환수하게 되었는데, 이런 경사에도 마을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국왕을 몰아내자고 나선 판에 그 국왕의 이름을 딴 마을이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었던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황급히 마을 이름을 바꿨다.

마을 주민들은 해가 떠오르면 잠에서 깨어나고 해가 지면 함께 잠들었다. 전기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하수도, 화장실 시설 또한 꿈꿔본 적이 없다고 한다. 주민들은 짐승 사체가 썩고 있는 강물에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한다. 먹는 물은 그나마 펌프를 이용해 뽑아내는데 그 또한 깨끗한 물은 아니었다. 오염된 강물도 그렇거니와 마을 생활하수와 분뇨가 끊임없이 스며드니 펌프가 맑은 물을 내줄 리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물을 먹고 노상 배앓이를 한다고 했다. 주민들 대부분은 일자리가 없어 수입도 거의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강변 모래를 불법으로 파내 자루에 담아서 몰래 팔아 생계를 잇기도 한다. 도시 빈민의 삶이 어디고 다르겠는가만 프러거티 마을 주민들 또한 자력으로 희망을 찾기에는 힘겨운 점이 많았다.

거적 학교에 칠판을 걸고…

그런 마을에 지난해부터 조용한 운동이 시작됐다. 좀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주민들의 뜻과 작지만 따뜻한 지원이 만나게 것이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며 민간 운동을 보고 배운 네팔인들이 단체를 구성해 네팔 사회의 발전을 위해 나섰다. 이 단체는 네팔 사회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의지를 갖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우선 주민들과 단체는 서로 협력해 마을에 조그만 학교를 세웠다. 한 마을 청년이 방치된 채 길에서 구르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던 거적 학교를 손질해 칠판을 걸고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생활개선 운동을 펴서 모래주머니를 쌓아 하수로를 만들고 마을 곳곳에 펌프를 설치해 허드렛물을 퍼올렸다. 식수를 정화하고 물 끓여먹기 운동을 벌였다. 시와 협상해 마을에 전기도 들여왔다. 마을 주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일들을 함께하며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그 소식을 듣고 감동해 학교 운영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에 나서고 의료캠프를 열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았다. 우리는 지난 한 주를 마을 주민들과 울고 웃으며 보냈다. 우리가 실천한 작은 연대가 가난한 나라 민중의 자립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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