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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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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준비도 계획도 없어”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재정 통일부 장관에게 듣는 한반도의 미래…“정상회담 시시비비는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에 매이지 말아야”

▣ 진행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은 3월16일 통일 및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을 수립·총괄하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에게 길을 물었다. 이 장관은 최근 참여정부 임기 내 정상회담 추진설과 관련해 “정상회담에 대한 시시비비는 전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대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게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전략적 개념의 ‘이면합의’ 상상도 못해

3월21일이 장관 취임 100일이다.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

=아무래도 인사청문회 때가 제일 힘들었다. 취임 이후엔… 글쎄, 늘 힘들어서 어느 때가 제일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웃음) 지난달 20차 장관급 회담을 준비하면서, 또 회담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지난달 장관급 회담의 성과는 뭔가.

=20차 장관급 회담은 핵실험 이후 첫 번째 회담이고, 7개월의 공백기 이후 열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남북 관계 정상화와 남북 대화 정례화에 역점을 두고 진행했다. 무언가 성과를 만들기보다 장관급 회담을 중심으로 남북 대화가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될 수 있도록 체계화·제도화하는 데 집중했다. 또 한반도 평화 정착과 비핵화, 현안인 2·13 베이징 합의에 대한 신속한 이행도 집중 논의했다. 북쪽이 ‘원만한 이행’이란 표현을 선호해 공동보도문에 그렇게 썼지만, 2·13 합의의 신속한 이행에 남북이 합의한 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그동안 미결로 있었거나, 이행하지 못했거나, 중단됐던 일들을 다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특히 적십자 회담이나 경추위 회담 등 과제를 위한 회담의 일정과 의제에 모두 합의해 남북 관계 정상화의 기반을 만들었다. 당초 기대의 90%정도 성과는 냈다고 본다. 다만 한반도 평화 정착으로 한발 다가서는 발전된 과제를 만들어내지 못한 게 아쉽다. 이번 회담이 갖는 기본적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회담이 끝난 뒤 쌀·비료 지원 문제를 놓고 일부에서 ‘이면합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쌀과 비료에 관한 논의 과정을 밝힌 것을 놓고 ‘왜 이게 공동합의문에 들어가지 않았느냐, 이면합의가 있는 거 아니냐’고 추궁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표현상 의미가 잘못 전달되어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면합의할 내용도, 그런 목적도, 필요도 없었다. 핵실험 이후 처음 열린 회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신의를 가지고 회담을 이끌었다. 때문에 전략적 개념의 ‘이면합의’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2·13 합의와 관련해 국회에 출석해 ‘남북 관계와 6자회담의 선순환’을 언급했는데.

=북핵 폐기가 곧 평화 정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핵 폐기를 넘어서 큰 틀의 평화 정착이란 과제가 있다. 큰 틀의 가치와 역할을 남북 대화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6자회담이 다루고 있는 핵 폐기 과정은 중요하다. 남북 관계와 6자회담은 선순환적 병행구조가 돼야 한다. 두 가지가 서로 진전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호동력을 제공하고,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남북 관계-6자회담, 선순환적 병행

2·13 합의 이행 과정에 남북 관계 일정을 맞춰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남북관계가 6자 회담의 진전이나 시차보다 뒤져 있다고 뒤져 있는 게 아니다. 좀 더 넓게 멀리 바라보면서 해석해야지, 그때그때 평가하는 건 좁은 안목이다. 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핵심은 남과 북이다. 남북이 의제를 정하고, 실천 동력을 만들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가령 경제협력추진위 회의가 4월18일, 그러니까 (2·13 합의에 따른) 초기 단계 이행조치 완료시점 이후에 있기 때문에 ‘연관돼 있는 거 아니냐, 종속되는 거 아니냐’는 질문들을 한다. 하지만 이는 그저 다음번 장관급 회담 이전까지 3개월 동안 진행해나갈 과제를 월별로 정리해놓은 것이다. 큰 틀에서 볼 일이지, 남북 관계를 계산적으로 너무 좁게 봐선 안 된다.

6자회담이 다시 삐걱거리기라도 하면, 남북 관계도 지난해 7월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남북 대화는 상황이 악화됐을 때라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대전제다. 남북 관계가 나아갈 이정표가 뭐냐?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이다. 또 남북 간 정례적·정상적으로 제도화된 대화의 틀도 지속해야 한다. 끊임없는 교류와 협력 강화를 통해 쌍방 간 신뢰도 구축해나가야 한다. 이게 남북 관계 발전의 기본틀이다. (2·13 합의) 초기 단계에 매여 가는 건 아니다. 물론 그걸 꼭 배제한다는 말도 아니다. 선순환적 병행이다.

광폭으로 바뀌는 북-미 관계가 남북 관계를 규정지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동의하지 못한다. 한가운데 서서 동력이 되고, 의제를 제시하고, 목표를 제시하는 건 남북 관계가 해야 할 과제다. 지금까지 역할을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내에서도 북-미 관계와 6자회담에 비중을 둔 외교통상부식 대북 접근 논리가 지배적이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 전략적 대응을 하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외교안보 라인의 기본은 이거다, 저거다 하는 것은 초보적인 규정이라고 본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떤 전략적 개념으로 접근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큰 틀에서 멀리 내다보는 쪽으로 문제를 보고 해석해야지, 한 상황을 놓고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건 옳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7년 전과 달리 뚜렷한 과제가 없다고 했는데.

=정상회담은 남북 관계의 근본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언제든 정상회담을 한다면 최고의 의제를 가지고 모이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정상회담의 가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2000년) 6·15 이후 지금껏 남북 정상회담은 살아 있는 현안이자, 열려 있는 과제다. 남북의 정상이 필요성과 의의를 확인할 때 만날 수 있고, 만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남북이 모두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핵 문제를 풀기 위해 심도 있는 논의와 관계 개선에 집중하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과정이 성공적으로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현재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도, 구체적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열차 시험운행은 상반기 중 이뤄지도록

그럼에도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으로 정상회담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온다.

=비중 있는 정치인이고 총리를 역임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 말씀에 대해 존중하고 의미를 잘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번 방북은 정당을 대표해 정치인으로서 간 것이다. 당에 동북아평화위원회라는 게 처음 만들어졌다. 여러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북한과 중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여서, 큰 비중을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상회담에 대한 시시비비는 전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대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게 대부분이다. 정말 마땅치 않다.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군사회담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군사회담은 언제든 열려고 하면 열 수 있는 회담이다. 무엇을, 어떻게 논의하느냐가 중요하다. 현 단계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기 단계 이행 과정이다. 적어도 현 단계에선 군사회담을 열 의제가 없었고, 회담 개최에 대한 합의가 없었을 뿐이다.

통일부에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태스크포스가 구성됐는데.

=(2005년 베이징) 9·19 공동선언문에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 포럼을 만든다는 항목이 있다. 논의 과제를 미리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런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기까지 50년이 넘게 걸렸다. 해방 이후 갈등이 일어났던 때로부터 따지면 60년이다. 조급하게 다룰 게 아니다. 평화체제에 접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남북 관계 정상화, 한반도 전체의 정상화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국제사회와 한반도의 관계 정상화다. 지난 몇 년 동안 초보적 단계를 열심히 진행해왔고,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좀더 새로운 변화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평화체제야말로 대단히 복잡한 단계가 있다.

대북 경공업 원자재 지원과 철도 복원 등 경제협력 현안에 대한 정부의 의견이 궁금하다.

=넓은 틀에서 보면, 남북 간 이견이 있다기보다는 원칙에 공감하고 있다. 철도 시험운행, 이를 위한 군사보장에 대해서도 인식을 같이하고 필요성에 공감했다. 서둘러야 한다는 점에도 양쪽의 생각이 같다. 지난해 5월 시험운행을 하지 못했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보고, 열차 시험운행은 상반기 중에 이뤄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경공업 원자재 지원과 지하자원 공동개발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3개월 이상 걸린다.

차관 방식의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안다.

=대북 쌀 지원은 현재 차관 형식으로 10년 거치 20년 상환을 하도록 하고 있다. 경공업 원자재 지원은 5년 거치 10년 상환이다. 둘 다 차관 형식으로 돼 있는데, 쌀은 인도적 사안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시민들도 그렇게 얘기한다. 우린 양곡이 남아서 저장 비용만도 엄청난데, 그것을 북에 지원해주자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쌀 지원이 이제까지 차관 형식으로 이뤄진 건 남북 간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인도적 지원 문제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쌀을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는 게 올바른 방법인지 연구해보겠다는 뜻이었지 꼭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다.

인도적 지원에 상호주의는 배격해야

인도적 지원은 외부적 요인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돼야 한다고 보나.

=쌀이든 어떤 지원이든 국민의 세금이 쓰인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야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인도주의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부분이 있고, 국민들이 ‘얻어오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호주의는 배격한다. 상호주의는 여기(인도적 지원)에 적용될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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