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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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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일상에 스며들었으면…”

등록 2007-03-03 00:00 수정 2020-05-03 04:24

기고 파문 뒤 스스로 낸 사표가 수리되는 날 만난 금태섭 전 검사…“쓰고 싶었던 글 후회 안 해… 법 절차가 대중에 가까워지도록 노력”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1975년 4월15일 미국 뉴저지. 21살의 캐런 앤 퀸란은 대학 기숙사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신경안정제와 술을 먹은 뒤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후 미국 사회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와 생명권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에 빠져들었다. 결국 ‘안락사’는 대안적 죽음의 하나로 인정받게 됐다. 여자로서 투표했다는 죄로 구속된 수전 앤서니, 매카시 광풍에 맞선 라디오 스타 존 헨리 폴크, 보험계약자들을 울리는 생명보험 회사의 횡포에 맞선 암환자 넬린. 이들은 캐런 앤 퀸란처럼 미국의 문화·사회·법률의 지각변동을 이끌어낸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사연과 관련 재판 과정을 다룬 책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지음, 궁리 펴냄)의 한국 번역자는 낯익은 인물이다.

지난해 9월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에 기고했다가 검찰 수뇌부의 기고 중단 종용을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옷을 벗은 금태섭(40·사시 34회) 전 검사. 모두 10회 분량으로 구상됐던 그의 글은 첫 회인 ‘피의자가 됐을 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만이 실리고 2회분부터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인 신문 기고가 ‘검찰의 조직 기강을 뒤흔든 큰 사건’으로 번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검찰에 제출한 사표가 수리되던 날인 2월22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일부러 일을 안 준 건 아냐

은 미국은 물론이고 서구 사회의 근현대사에서 작지만 중요한 변화의 계기를 가져온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당신의 신문 기고는 작은 변화지만, 이것이 검찰의 커다란 변동을 가져올 수는 없을까.

= 이성적·논리적 토론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개하고 싶었다. 그런데 신문 기고에 대한 조직 내 논란 과정에서는 실제 글 내용에 대한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리 (상부에) 보고를 했느냐, 안 했으냐 하는 절차의 문제가 주된 논점이었다. 아쉬웠다. 그러나 검찰조직도 이전과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건이 불거진 뒤 수사 부서에서 비수사 부서인 총무부로 발령이 났는데 일을 주지 않는 등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고 들었다.

= 아니다. 총무부는 원래 국정감사가 끝나면 일이 줄어든다. 일부러 일을 안 주지는 않았다.

기고가 좌절된 뒤부터 사표를 내기까지 4~5개월 동안 선후배 동료 검사들의 반응은 어땠나.

= 아무래도 부정적인 반응을 직접 내게 전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많은 검사들이 글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을 전했고, 일부는 뜻에는 동의하는데 현직 검사가 직접 쓴 것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총장의 ‘경고’ 처분을 받았다. 검찰에서는 대검찰청 예규인 공보업무 관리지침 준수 의무 위반과 품위 손상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

= 법적으로 의미가 없다. 검사징계법에는 경고가 없다. 말로 야단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경고 결정이 내게 직접 통보된 바도 없다. 검사의 개인적인 견해는 공보업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지침 위반도 아니다.

첫 번째 기고문의 내용은 한마디로 피의자가 됐을 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변호사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검사들조차 ‘자백하지 않는 게 유리한 사건은 전체 형사 사건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을 폈다. 지금도 글의 내용이 틀렸다거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가.

= 자백하는 게 유리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오히려 국민을 오도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1950년대 미국 대법원 판결을 보면 ‘수임료를 받을 자격이 조금이라도 있는 변호사라면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절대 수사기관에서 말하지 말라고 얘기할 것이다’라는 부분이 있다. 물론 혈중 알코올 농도까지 조사된 음주운전 사건 같은 경우에는 자백이 유리하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본적 권리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자백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자백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평생 한 번 정도 겪을까 말까 한 것이 형사 사건이다. 어떤 선택권이 있는지도 모른 채 ‘혹시 이랬다가 (수사하는 주체들한테서) 욕을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백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글을 쓴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 후회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그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글이 나간 뒤 친한 분들이 ‘정치 하려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하더라. 그런 동기는 전혀 없다. 만 12년 이상 검사 생활을 해오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서 뭔가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일이다.

여전히 결론은 “아무 말 하지 마라”

기고 배경을 설명하면서 ‘검사 생활 동안 안타까운 피의자를 많이 봤다’고 했는데 어떤 경우인가.

= 검찰청에 자주 오는 사람들, 즉 범죄 경력이 화려한 이들일수록 피의자의 권리를 잘 알고 대응을 잘하는 데 반해 오히려 평생 한 번 오는 이들은 권리에 문외한인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검사들은 ‘우리가 언제 피의자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악용해서 괴롭혔느냐. 불쌍한 사정이 있으면 그만큼 살피지 않았느냐’고 반론하지만, 검사들이 아무리 살피더라도 변호인만큼은 못한다. 세계 문명국의 사법 시스템이 피의자만을 위해 일하는 변호인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검사가 되고 싶었나. 검사의 매력은 무엇인가.

= 어려서부터 꿈이 탐정이었다. 활동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실력과 의지가 있다면 사회악과 맞서 정의를 세울 수 있는 보람 있는 직업이다. 검찰이 권위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임관 때와 비교해보면 아래위 사이의 의사소통도 자유로워졌다. 대선자금 수사 이후에는 정치적 중립성도 상당히 확보했다. 참여정부의 주요 공적이라고 본다.

수사 과정에서의 피의자 권리 문제를 제기했는데 현행 제도에서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지 않나.

= 구체적인 부분을 훑어보면, 개선의 여지가 많다. 예를 들어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변호인이 참여하는 문제는 검찰에서 준칙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변호인이 조사실에 들어와 피의자 뒤에 앉게 돼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피의자가 맞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받는 것을 감시하라는 취지다. 옆에서 법률적 조언을 구하는 구조가 아니다. 현재 상태라면 변호사보다는 가족을 앉히는 게 낫다. 변호사에게 뒤에 앉아서 구경하라는 것은 부적절하다.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지만, 피의자가 답변하기 전에 의논할 수 있어야 변호인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변호인이 실질적 도움 주도록 옆에 앉혀야

변호사로서 어떤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나.

= 아내에게 모의재판을 보게 했더니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유죄가 입증되어야 유죄’라는 말도 어렵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beyond the reasonable doubt’ 같은 표현은 일상용어다. 법조와 국민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어 법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법을 다루는 절차와 과정이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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