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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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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 뒷골목에서 하지 말라”

등록 2006-12-19 00:00 수정 2020-05-03 04:24

민노당 지도부의 일심회 사건 자체 진상조사를 이끌어낸 심상정 의원…당이 현재 처한 상황은 리더십의 위기… 대선 후보 출마 깊이 고민 중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당 간부가 연루된 일심회 사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민주노동당이 드디어 침묵을 깼다. 자체 진상조사를 요구해온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의 요구를 당 지도부가 받아들인 형국이다. 심 의원은 사법부의 형사처벌 절차와는 무관하게 당의 조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며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문제가 민주노동당의 국민적 신뢰 회복과 집권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당 전체의 충격이 컸다”

일심회 사건에 대해 최고위원회와 중앙위원회를 통해 국민과 당원들에게 사과와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사건이 터진 지 벌써 두 달이 다 돼가는데 너무 늦지 않았나.

= 당이 직접 나서 진상 규명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는 결정이다. 미흡할 수도 있지만, 당 지도부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 간부가 연루됐다는 점 때문에 당 전체의 충격이 컸다. 내가 당내에 많은 오해와 논란이 뒤따를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진상조사를 요구한 것은 사건의 파장과 충격이 클수록 ‘광장’과 ‘대로’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검찰 조사 내용대로 당직자들에 대한 정보가 대규모로 북한에 넘어갔다면 문제 아닌가.

= 진상을 조사해야 하겠지만, 장민호의 컴퓨터에서 나왔다는 자료를 보면 당 내부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이토록 많은 정보가 본인들의 동의 없이 유출된 점은 유감스럽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내용이 공안기관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보조금을 받는 공당이다. 만에 하나라도 외부 세력이 당을 조종하려 했고, 간부가 이에 연루됐다면 깊은 반성과 자기성찰이 있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민주노동당 내부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적절해 보이고 국민적 설득력도 떨어진다. 두 사안은 분리해서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 국가보안법이 어떤 정치적 조건에서 존재하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본다. 일심회 사건도 수구보수 세력의 음해나 탄압의 기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발표한 것을 보면, 북한의 공작적 개입 아래 당 간부가 연루돼 많은 정보와 자료가 북한에 제공됐다고 돼 있다.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당 스스로가 나서 조사하고 투명하게 규명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입장 표명을 유보하거나 뭉갠다면 민주노동당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평화통일 세력이라는, 지금까지의 지위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 집권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음침하고 어두운 정당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서민의 삶을 책임지고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집권의 목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당의 지위에 걸맞은 실천을 해야

갈등을 부추기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일심회 사건을 놓고 당직자나 당원들을 만나면 (당내 정파 갈등과 관련해서) “이대론 같이 못한다. 딴 살림 차리자”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듣게 된다. 이런 문제의 근원에는 북한에 대한 입장 차이에 따른 정파 갈등이 있다. 당의 입장 표명도 이런 갈등을 일시적으로 봉합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 북한의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지난 91년 남북기본합의서로 정리됐다. 독립된 주권국가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관계라는 것이다. 문제는 구체적인 통일 방안이나 그 과정에 대한 상당한 인식 차이다. 그런데 좀더 큰 틀에서 대안적인 논의를 하지 못하고 관성적인 정파 구도로 논의가 고착돼온 것도 사실이다. 평화통일의 열망에 대한 진정성은 존중한다. 그러나 우리는 집권을 목표로 하는 공당이다. 우리가 자임하듯 서민의 삶을 책임지고 평화통일을 이뤄내겠다는 공당으로서 지위에 걸맞은 실천을 해야 한다. 평화통일 노력은 뒷골목에서 할 것이 아니라 대로에서 해야 한다. ‘대로 정치’가 그분들의 열망에 더 부합하는 길이다.

통일을 이루는 방식에 대한 차이라고 한다면 기술실무적인 문제로 볼 수 있을 텐데 문제는 북한 정권의 성격에 대한 입장 차이가 현격한 데서 오는 것 아닌가. 사활을 건 끝장토론을 하더라도 결말을 봐야 할 사안이라고 보는데.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 양극단의 입장, 즉 ‘북한민주화론’이나 ‘북한민주기지론’ 같은 것은 적어도 진보진영 안에서는 극복됐다고 본다. 다만, 전환기를 통과하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 흐름 속에서 북한에 대한 태도가 혼란스러운 것은 민주노동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전환기적 혼란스러움에 빠져 있다. 냉정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이 미국의 부당한 공세에서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이고 창조적인 국가 발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북한 정치 지도자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타개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북한이 앞으로 진보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지향을 가지는 정상 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돕고 나눠야 한다. 끝장토론으로 가부간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평화통일에 대한 열망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점검하면서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가야 한다. 인내가 필요한 문제다.

비전 갖춘 ‘민주적 리더십’ 시급

일부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간극보다 더 큰 간극이 민주노동당 정파(NL-PD) 사이에 존재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 그렇지는 않다. 한나라당은 냉전세력 아닌가. 민주노동당 안에 냉전세력은 없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핵 문제나 일심회 사건도 그 사건 자체보다 거기에 대한 대응이 늦은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결국 다른 의견을 묶어낼 수 있는 리더십의 부재가 위기를 부추긴 것 아닌가.

= 현재 당이 처한 상황은 리더십의 위기다. 당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도 국민들의 신뢰를 획득하고 당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그 과정에서 당원들이 동참하도록 하는 민주적 리더십이 시급하다. 당 내부 의견그룹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당원 전체를 묶어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진보에 대한 철학과 당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등 큰 정치 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나름대로 선전해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에 내년 12월은 잔인한 달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진보세력 전체에 대한 사회 불신이 커지면서 내우외환의 위기 상황이다.

= 민주개혁 세력의 패배 속에서 한나라당이 득세하고 있지만, 50% 정도다.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진보사회로 가기를 열망하는 국민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도전을 어떻게 기회로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에는 엄청난 도전이자 기회라고 본다. 진정한 진보정당과 서민정당으로 가는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다. 당원들에게는 비전을 주고, 국민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안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데 후보로 나설 작정인가.

= 민주노동당 의원으로서 당 발전에 유익하게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이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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