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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왔으면 법의 잣대로 할 수 밖에”

등록 2007-01-27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명호 전 성대 교수의 재임용 사건을 담당했던 주심 이정렬 판사…교육자적 자질·교원으로서 품위 충족 못해 법대로 판결했을 뿐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판사가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부장판사 피습사건’의 발단이 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재임용 관련 사건을 맡았던 주심 이정렬(38) 판사를 1월19일 만났다. 이틀 전 법원 전산망에 A4용지 5쪽 분량의 글을 올려 재판 전후의 소회를 상세히 밝혔던 이 판사는,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로 언론의 주목을 끈 적이 있다. 이 판사는 “민사 재판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소송 관계자의 절반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자율성을 가진 대학이나 사회에서 결정할 문제가 법원에 오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복 주장과 별개로 임용 기준은 충족했어야

법원 전산망에 올린 글을 보면 판결을 앞두고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지만, 결국 김 전 교수가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판결 이후 언론 보도와 여론 방향을 보면서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문제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그런 논의의 발단에 적합한지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심리 과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추측하는 방식으로, 또 그 추측이 전제가 되고 증폭돼 ‘재판이 불공정했다, 법원이 기득권층을 옹호했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전혀 사실과 다르다. 물론 판결 내용에서 반드시 우리 판단이 맞다고는 얘기하지 못한다. 상급심이 있고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한 판결을 할 수는 없다.

이 판사의 글과 판결문 전체가 공개된 뒤 논란이 증폭되고 있지 않나. 판결문을 읽어보지 않고, 혹은 사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얘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판결문에 언급하지 않은, 재판 과정의 뒷얘기를 모두 공개하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게 어디에 도움이 되겠나. 결국은 김 전 교수를 두 번 죽이는 게 된다. 묻는 것에 대해 답을 할 수는 있는데 (판결문에 공개된 것 이상)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비난한다면 속으로 삭이고 참을 수밖에 없다.

판결의 요지는 “학생의 교수·연구 및 생활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육 관계 법령의 준수 및 기타 교원으로서의 품위 유지라는 기준에는 현저하게 미달된다. 재임용 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김 전 교수의 교육자적 자질을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는 비판이 있다.

=교수의 재임용과 관련해 법이 명확지 않다. 대법원의 판례는, 2004년 김민수 서울대 교수 사건 이후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공정한 심사를 받을 권리가 있다’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판결했다. 김명호 전 교수 사건에서 합리적 기준은 뭔가. 학교가 교수를 임용하는 거니까 학교의 기준이 있을 것 아닌가. 그 기준은 정관에 있었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비합리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연구실적, 교육자적 자질, 교원으로서 품위다. 셋 가운데 하나만 충족하면 되는 게 아니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연구실적은 되지만, 나머지 2개는 어떻게 되느냐를 따졌다. 김 전 교수에게 보복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에는 맞았어야 한다. 그 기준에 맞지 않는데 ‘보복을 당했으니 그걸로 끝 아니냐’ 하는 식은 비법률가적 사고이다.

결국 재판부가 김 전 교수는 교육자적 자질이 없다고 본 것 아닌가.

=그건 아니다. 그건 교원인사위가 할 일이다. 교수를 임용하는 학교가 재임용을 않기로 결정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판단을 거쳐 재임용을 않기로 했는데 그 결정이 타당하냐 아니냐, 무효냐 아니냐가 심판의 대상이다. 학교는 김 전 교수가 자질이 없다고 봤다. 우리가 심리를 해봐도 그 부분은 맞다. 세 가지 중에서 두 가지를 충족하지 못했다.

‘왜 나만 잡냐’는 식으로 말해서야

김 전 교수가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과 그의 재임용 거부 결정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법원은 인정했다. ‘합리적 기준’은 그렇다 치고 ‘공정한 심사’가 가능했겠는가.

=사실 그 부분(보복)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 결심 때 피고(성균관대학교) 소송대리인도 “입시 문제 오류 지적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증언과 제출된 자료로 볼 때 이분이 교수로서 자질이 있느냐다”라고 했다. 즉, 보복 개연성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었다. 재판부는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어느 정도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가를 본다.

김 전 교수의 자질과 관련된 부분은 주로 입시 문제 오류를 지적한 이후의 일이 거론돼 있다. 교육자적 자질 문제에 관해서는, 김 전 교수에게 보복을 가한 교수들을 포함해 김 전 교수보다 더 ‘부적절한’ 교수들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1993년의 일은 문제 오류를 지적하기 이전의 일이다. 사실 (김 전 교수의) 행위 하나, 말 하나를 놓고 보면 너그러이 용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쌓이고 모여서도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가느냐는 다른 문제다. 다른 교수들의 교육자적 자질 문제도 마찬가지다. 교통경찰이 적발할 때 ‘왜 다른 사람은 안 잡고 나만 잡냐’는 얘기와 같다.

대학 사회에 필요한 교수상이 인격자만은 아닐 것이다. 학교 정관이 요구하는 교육자적 자질은 부족하더라도 그런 결함을 메우고도 남을 남다른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설 땅이 없겠다.

=그런 사회적 문제는 잘 모르겠다. 교원의 자격과 일이 법에 나와 있다. 학생을 지도해 민주시민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키우고 장차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인재를 양성하는 사람이다. 살인, 강도 그런 법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덕 교과서 같은 내용도 법이다. 그런 상태를 용인할 것이냐 아니냐는 자율성을 가진 대학이나 사회에서 결정할 문제다. 법정에 와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은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의 자율성이 중요하고 그 자율적인 모습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법원도 이를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법에 해결해달라고 오는데 법이 아닌 다른 잣대로 판단할 수 있겠나.

믿었던 재판부도 인정 않을 정도면…

김 전 교수는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도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우세하다.

=김 전 교수는 법원 앞 1인시위와 관련해 명예훼손 형사 사건으로 계류 중이다. 그런데 그 재판부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기피신청을 했다. 우리에 대해서는 기피신청을 하지 않았다. 만약 불공정했다면 기피신청을 했을 것이다. (석궁 사건 이후) “항소기각으로 인생이 끝장났다”는 말씀을 했다. 그만큼 우리 재판부를 믿었던 것 아닌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기대와 다른 결과에 더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게 아닌가.

=달리 보면 그렇게 믿는 재판부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면… 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 내가 (김 전 교수에게) 느낀 배신감은 ‘판결문이라도 보시지’ 하는 거다.

판결문을 봤다면 달리 행동했겠나.

=글쎄…. 사실 이번 재판에 임하면서 남 일 같지 않았다. 나도 2월에 법관 재임용 심사를 앞두고 있다. 법원 내부 문제를 비판해왔고,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에서는 김 전 교수와 비슷한 처지에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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