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 논의의 중심 김형수 사무총장…“통일 문제는 6·15민족문학인협회가…문단 안팎 인식차 좁힐 터”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작가 단체가 이름을 바꾸려는 데 언론이 딴죽을 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1987년에 생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단체 이름을 ‘작가회의’ 또는 ‘한국작가회의’로 바꾸려는 데 대해 일부 보수언론들이 “이름만 바꾸지 말고 좌파적인 실체를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김형수(48)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명칭 변경을 논의하는 총회가 열린 1월27일 하루 전인 26일 오후에 이뤄졌다.
봄이 돼 꽃을 피운 것처럼 자연스런 흐름
왜 갑자기 명칭 변경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인가.
= 작가회의 안에서 특별한 젊은 개혁세력이 있어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꽃에 물을 줘서 가꾸는 게 아니라 봄이 되어서 꽃이 피는 것처럼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이다. 그런데 뉴스가 생각보다 커지면서 느낀 점은 지금이 엄정한 시기라는 것이었다.
단체의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 원래 우리 단체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의 필화사건에 대해 문인기구가 “구속해야 마땅하다”고 의견을 낸 데 경악을 금치 못한 문인들이 김지하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의 현장이 조직으로 바뀐 것이다. 야전지휘부의 성격이었다. 이른바 ‘문인 101 선언’이 단체화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이름이 바뀌었다. 명칭 변경 문제는 2004년에 이미 공식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논의 결과 “문학적 분단 상황을 용인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어 논의를 미뤘다. 통일 될 때까지는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일부 문제 제기가 있었다. 민감한 사안이어서 표결하지 않았다. 만약 표결해서 49 대 51로 조직이 내부적으로 쪼개지는 상황이 와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6·15민족문학인협회’가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남북 문인의 단일 창구가 생기는 것이니까. 그런데 지난해 ‘6·15민족문학인협회’가 만들어졌다. 현재 남북 모두 집행부만 존재하는 상황이고 남쪽에서는 사무실 확보를 위한 모금활동 중이지만, 곧 회원을 받는 절차도 밟을 예정이다. ‘민족문학’이라는 이름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내부에서 고은 시인 같은 원로는 반대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 다른 단체나 분야와는 달리 문학 분야는 1970년대에 활동하던 1세대 선배들이 80년대에 이어 지금까지도 중심이 되어 있다. 선후배 사이의 결속이 높다. 선배 세대들이 애착을 많이 가질 텐데 젊은 친구들이 건의해서 선배들의 견해가 수정되는 것 아닌가 하는, 외부의 관심이 크다. 언론이 1세대들에게 집중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어르신들께 물었다. 대부분이 변경에 동의한다. 상임고문인 고은, 신경림, 송기숙, 백낙청 선생님 가운데 나머지 분들은 모두 찬성이다. 다만, 이름이 바뀌는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과 함께 일부 신중론과 염려가 섞여 있는 것은 맞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동적 사조’나 ‘반동적 시대정신’이 발호할 수 있는 시기임을 염려하는 것이다. 고은 선생님의 견해가 바로 그렇다.
고은 선생은 ‘시기’를 잘 선택하라는 것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대사회적 이미지도 이름을 바꾸는 주요한 이유가 아닌가. 정치적 성향이 강한 소수 비주류 문인집단으로 비쳐지는 데 대한 반발이라는 시각도 있다.
= 몇 가지가 겹쳐져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한국 문학은 오랫동안 국가적·민족적 내홍 속에서 문학적 가치관이 형성돼왔다. 그 안에서 ‘민족문학론’이라는 담론이 출현했다. 민족문학론이 시야에 담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 내부였다. 통일 문제나 반독재 민주화 투쟁 정신 같은 게 그렇다. 그렇게 형성된 담론이 포괄할 수 없는 영역이 점점 많이 생겨났다. 그런 와중에 작가회의 내부에서도 새 흐름이 있었다. 1993년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 내부 서클로 생겼다. 인류사의 보편적인 지평위에서 문학인의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전 때는 파병 반대를 위해 오수연이라는 젊은 작가 한 명을 현지에 파견했다. 팔레스타인 작가들과 교류도 했다. 예전에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집중됐던 작가회의 산하 자유실천위원회의 실천이 외국인 노동자, 국제사회에서의 정의 문제 등으로 관심과 활동영역, 작품의 무대가 넓어져갔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우리 내부에 타자에 대해 열리지 않으려는 배타적 습성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들이 중요한 이웃들인데 그들과 함께 어깨를 결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것 말고도 한국 사회 내부에서 문단 안과 바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회원이 1300명이고 한국문인협회는 7천~8천 명 정도 될 텐데 한국 문학사 안에 존재하는 작가들 가운데 90% 이상이 민족문학작가회의 작가들이다. 그런데 문단 밖에서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두고 ‘한국 문학의 넓은 자장 안에서 소수 정치 지향적인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것처럼 오해했다. 언제나 힘들게 설명해야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었다고 들었다.
= 경험 세계가 우리와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출현도 명칭 변경에 영향을 줬다. 그들은 ‘건강한 문학 활동을 통해 민족문학의 정신이 구현되어야지 단체 이름에다 왜 그걸 붙여야 하느냐’고 물었다. ‘민족문학 진영에 줄을 서야 하는 느낌이 든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가입하지 않으려는 젊은 회원들이 꽤 있었다. ‘시대적 정신을 거스르고 있다’거나 ‘왠지 깃발을 걸어놓고 모으는 느낌이 든다’는 얘기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든 대답해야 했다.
보수언론들은 실체를 바꾸지 왜 이름만 바꾸려 하느냐고 지적한다.
= 언론에서 그렇게 지적하는 것은 주로 민족, 남북관계, 이라크전 파병 문제와 관련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단체가 커지면서 단일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한나라당 성향부터 민주노동당 성향까지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정치적 사안과 관련해서는 이견이 꼭 생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으로 통일되는데, 평택 문제에 대한 태도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내부에서 급진적인 정치적인 견해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곳이 자유실천위원회다.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름이 아니라 자유실천위원회 이름으로 의견을 내거나 실천 활동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사안은 내부 위원회 이름으로
이름이 바뀌게 될 경우 예상되는 변화는 무엇인가.
= 민족이나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6·15민족문학인협회’가 많은 부분을 담당할 것이다. 30년 동안 선배들이 쌓아온 문학적 위엄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곤혹과 딜레마를 문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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