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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자살사건 업무관련성 인정해야”

등록 2006-12-08 00:00 수정 2020-05-03 04:24

자살사건 조사로 활동 시작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 김호철 상임위원…“안보재해적 관점 도입하고 군 사망자 보훈체계도 전면 재검토해야”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 5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의 활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사가 시작되면서 숨겨졌던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28일 위원회는 ‘군내 자살처리자,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김호철(42)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은 그동안 접수된 진정 사건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자살처리자 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06년 11월17일까지 접수된 242건의 진정 사건 가운데 60%가 자살로 처리됐다. 특히 1980∼94년 군 자살자는 한 해 100∼400여 명으로 일반인 자살률보다 2∼3배 정도 높았다. 2000년대 이후 전체 군 사망자는 100명 이하로 줄었지만, 사망사고 가운데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상병까지 자살률 68%, 개인 문제일 수 있나

군 의문사 가운데 특별히 자살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진정 사건에서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80년대 이후로만 보면 80%에 육박할 정도다. 진정인들의 의혹과 불신이 가장 큰 분야이기도 하다. 군 당국 조사 결과를 보면 자살 원인을 너무 개인적인 것으로 결론지은 게 많다. 조사와 분석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의혹에 대해 꼼꼼히 살핀 뒤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유족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다. 후속 대책이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위로금 500만원에 장례비 200만원 정도다. 그것도 최근에 생겼다. 묘역 안장 등에서도 가장 열악한 대우를 받는다. 사회적 평판도 마찬가지다. 유족들도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진정 사건 가운데 실체에 접근해가고 있는 것들이 있나. 군 당국의 기존 조사 결과가 뒤집힐 사건이 많은가.

= 묻혀 있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군 당국은 자살 원인을 ‘부대 내 요인’과 ‘부대 외 요인’으로 나눈다. 부대 내 요인은 복무 부적응, 처벌 우려 등이 대부분이다. 사망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그 다음이 구타·가혹행위인데 비율이 낮다. 부대 외 문제는 가정 문제, 애인 변심, 금전 문제 등이다. 결국은 개인의 문제로 귀착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대 내 가혹행위나 구타 등 부대 내 구조적·환경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이등병과 일등병일 때 자살한 경우가 절반을 넘는 57%이고 상병까지 포함하면 전체 자살 사고의 68%인데 이것을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있겠나. 군 부적응 사병에 대한 관리도 부실했다. 감춰져 있던 성추행·성희롱 문제도 나타난다. 더 나아가 사망자 본인의 잘못으로 사망했다고 종결된 사건 가운데에서도 타인이 개입한 구타 또는 가혹행위 혐의가 드러나고 있다.

80년대의 경우 군대 내 자살이 엄청나게 급증한 것을 볼 수 있다. 전체 자살 사망 수 평균의 3~4배에 달한다. 강제징집 등으로 인한 구조적 폭력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자살 사건으로 처리됐지만, ‘타살’로 밝혀진 경우는 없나.

= 살인이나 가혹행위에 따른 명백한 타살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사를 하면 할수록 기존 조사 결과가 왜곡됐다는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남아 있는 자료 없어 일일이 참고인 방문

군 당국이 위원회의 조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나. 자료 제출 요구나 관련자 조사에 협조적인가.

= 협조적인 편이다. 군 스스로도 이번 기회에 밝힐 것은 밝히고 싶어한다. 문제는 과거 자료에 대한 접근이다. 90년대 초 이후에는 남아 있는 자료들이 있지만, 50~80년대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병적기록표와 같은 기초자료만을 근거로 참고인들을 찾아서 일일이 조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군 자료는 5년이 보존 연한이다.

시신처리 현황을 보면 냉동보관 중이거나 봉안소에 안치 중인 시신이 33건이다. 특히 냉동보관 중인 경우 군이나 유가족 모두에게 심적 부담이 클 것이다. 냉동보관료 때문에 재산과 월급이 압류된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 진정 사건 가운데 냉동보관 중인 시신이 15건, 화장해서 유골상태로 임시봉안소에 보관돼 있는 경우가 18건이었다. 월급이 압류된 경우는 시신 발견 장소가 부대 밖인 사건이었다. 일반병원 냉동보관소에 안치했는데 사망 원인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장례를 못 치렀다. 병원이 피해자 부모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는데 1심에서 1억몇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경우다. 냉동보관료가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군 당국과 유족들 사이에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불신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궁금하다.

= 유족들 처지에서 보면 이런 것이다. 국가에서 징병검사를 통해 군 복무에 적합하다고 결정해서 입대했는데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죽었다. 그런데 군 당국에서는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아서 자살했다’고 설명하니까 도저히 이해 못하는 거다. 내 아들은 군에 가기 전까지 아무 문제 없이 성실하고 쾌활했다, 그런데 왜 자살하냐, 난 못 받아들인다는 거다. 죽어 있는 자식을 확인한 뒤에도 ‘어딘가 살아 있다’고 항변하는 부모도 있다.

군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도 사태가 이런 지경으로까지 몰리는 배경인 것 같다.

= 그렇다. 구타가 개입됐다고 보는 유족들이 절반을 넘어서는 것을 봐도 그렇다. 백보 양보해 군 당국의 주장대로 개인적 요인이 개입됐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강제 징집했다면 징집하기 전의 모습 그대로 돌려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 돈 벌겠다고 스스로 찾아간 기업에서 회사일 때문에 사망하거나 다쳐도 ‘업무 관련성’을 인정해 재해로 규정하지 않나. 강제로 끌려간 군인에 대해서 ‘복무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런 무책임한 국가가 어디 있나. 자유로운 기업과 비교하면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공간이 군대다. 안보를 위해 징집된 병사에 대해서는 자살이냐 사고사이냐 여부와 상관없이 ‘안보재해’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타당한 논리다.

진상규명 결정적 공헌에는 최고 2천만원

위원회는 현재 강제조사권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군대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것 아닌가. 진상이 축소됐거나 은폐됐을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서 관련자들이 제대로 입을 열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나.

= 결국 온 국민의 입이 열려야 한다. 일반 참고인들의 경우에는 책임을 두렵게 여기는 것 같다. 공소시효나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해도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조사관들이 진정인이나 참고인들과의 관계에서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진상규명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참고인에게는 최고 2천만원까지 보상을 해주는 만큼 활발한 증언이 이뤄졌으면 한다.

조사가 끝난 뒤 이뤄져야 할 제도적인 보완책이나 정책적 고려사항은 무엇인가.

= 군 자살사건에 대해 안보재해적 관점이 도입돼야 한다. 또 전두환 정권 때 만든 군 사망자 보훈체계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판례도 한계가 있다. 맞아죽은 것이 밝혀지면 국가유공자가 되는데,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자살하는 경우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를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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