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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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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면 스토리가 끊어진다”

등록 2007-01-12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선 후보 출마 선언하고 전 전 대통령에게 세배 간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엎드려 절하진 말았어야… 색깔과 뿌리 다른 ‘차악’ 선택할 수 없어”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세뱃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도전인터뷰 중에도 다른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는 수차례 다운될 정도로 접속자가 넘쳐났다. 그는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직후보다 많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1월2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한 사진이 공개되면서부터였다. 원 의원은 3일 “본뜻을 이해해달라”는 취지의 해명을 하면서 수습해보려 했지만, 4일엔 “어쨌든 잘못했다”로 자세를 낮췄다. 대선 출마 선언과 관련해 그는 “한나라당 개혁 진영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디에 줄을 서겠나. 다른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증오를 언제까지 갖고 가야 하나

해명에서 사과로 입장이 바뀐 것인가.

=달라진 것은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한 것이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내 뜻을 밝힌 것이고, 내 뜻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아프고 불편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솔하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원인 제공자가 풀어야 하지 않나.

같은 시각과 장소,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면 달리 행동할 것 같나.

=정초이고 방문객 모두가 세배를 하니 세배객으로서 예의를 갖춘 것인데, 국민들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일단 엎드려 절하는 세배 형식은 피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을 방문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일부러 빼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갈등과 분열, 거기서 나오는 증오를 언제까지 갖고 가야 하나. 누군가는 언젠가는 넘어서야 하지 않겠나. 각도는 다르지만 한국전쟁 때 300만 명이 죽은 전쟁의 장본인인 김일성, 김정일도 이제는 안고 가자고 하는 때다. 질책은 받겠으나 내가 버려서는 안 되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해명 글을 보면, 동서화합과 화해, 용서를 강조했다. 화해는 진실 규명과 참회와 반성, 용서를 전제로 한다. 전 전 대통령에게 세배하러 가서 그런 부분을 촉구했나.

=따지러 간 자리는 아니었으니 면전에다 명시적으로 얘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아픔이 아물지 않고 한이 풀리지 않아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데 역사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뭐라고 하던가.

=의도하지 않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권하면서 많은 무리가 있었고, 그때도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고 하더라. 역사란 게 참 무서운 거라면서. 대면은 처음이었는데 다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5공화국 탄생 등에 대해 육성 증언 비슷하게 많은 얘기를 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의 발포 명령자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까지 그의 행적을 볼 때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많다. 386세대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명인 원 의원의 세배는 그런 흐름과 배치되지 않나.

=나의 방문과 세배가 전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마음속의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로서 전직 대통령을 언제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있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 안 했나. 공과를 따지고 역사적 평가를 정확히 하되, 역사의 일부에서 지우거나 부정하는 사고의 틀은 넘어서야 한다.

경선 도우미로는 위험이 크다

만화가 강풀의 을 봤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는 장면이 섬뜩했다. 학살을 암살로 갚는 사례는 역사에서 많이 봐왔다. 궁극적으로는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의 위대한 용서, 그것이 진정한 승리의 드라마이자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가 가해자로서 죽기 전에 진정한 사과를 할 것으로 보나.

=했으면 좋겠는데, 나와 만난 자리에서는 본인의 직접적인 관여와 책임은 아니라는 문맥을 깔고 얘기하더라. 그걸 누가 인정하느냐고 했더니 그 시대를 살았던 당사자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에는 역사가 다시 쓰여질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자신은 안고 간다고….

그런 점에서 화해를 언급하기에는 이른 시점 아닌가.

=시점도 이르고 여건도 안 됐다. 사과와 용서가 한꺼번에 끝난다기보다는 서서히 녹다가 다 녹으면 극복될 것이다. 출발은 이미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5·18에 관해 사면복권을 하면서 위대한 용서의 과정은 상당 부분 진행됐다. 국민들이 광주 문제 외에도 부정 축재, 현재의 생활 태도 부분에 대해 많이 분노하는 것 아닌가. 전 전 대통령이 스스로의 행위들 때문에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멀어지게 한 원인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대선주자로서 시선을 끌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시각도 있다.

=1월1일 미리 보도자료를 냈다. 그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악수만 했더라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재자 전두환한테 머리를 조아려?’ 이렇게 불꽃이 튄 거지. 함부로 남한테 엎드리면 안 되는 건데, 정초 세배라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서 생각이 짧았을 수도 있다.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원 의원이 경선에 출마하는 진짜 이유가 뭐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승산이 거의 없는데도 덤비는 데는 ‘몸값 올리기’ 차원 아니냐는 것이다.

=경선 도우미, 지킴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포지션만 갖고 있으면 득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불확실성, 위험이 너무 크다. 한나라당 개혁 진영에 대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내가 어디에 줄을 서겠나. 줄을 서면 녹아 없어지고 ‘스토리’가 끊어진다. 끊어졌다가 전혀 다른 스토리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후 세대 젊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나라 운영에 관해 어떤 프로그램과 비전을 제시하는지 물꼬를 트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몰매를 맞고 좌절하고 희생될지도 모른다. 이왕 나선 마당에 양분, 밑거름이 되기 위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견인한다면서 흡수되더라

한나라당 개혁 진영에 책임을 느낀다지만, 현재는 혼자 아닌가. ‘개혁 진영의 대표주자’라는 브랜드를 내세울 수 없지 않나.

=현재는 남경필·김명주 두 의원이 돕고 있다. 수요모임의 다른 의원들도 큰 틀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비슷하지만 캠프에 가담할 입장이 못 된다.

원 의원의 표현대로라면, 다들 줄을 서러 갔나.

=줄 서러 갔다기보다는 결정하기 괴로워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수요모임에서도 개혁 진영의 독자 출마보다는 ‘차악’을 택해 내용적으로 견인하자는 주장이 있지 않았나.

=색깔과 뿌리가 다르다. 한쪽은 과거에, 다른 한쪽은 미래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잘못 섞으면…. 세력 관계 측면에서 어려울 때 같이 간다면 견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중에 합류해 견인한다? 견인한다면서 동화, 흡수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 내가 그렇게 하면서까지 정치할 이유는 없다. 그 부분에 견해차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유력한 두 후보 가운데 누가 ‘최악’인가.

=…. 그것까지 얘기해야 하나. 그냥 웃기만 했다고 써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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