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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실천운동을 지켜보라”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반대투쟁보다 사회적 설득력을 주장하는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 당선자…“점수 매기는 교원평가제 대신 학생·학부모에게 직접 의견을 묻겠다”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정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당선자를 만났다. 맑은 날 호수 표면처럼 잔잔한 인상이었다.

목소리도 그랬다. 정 당선자는 “단식, 집회, 교섭 등 안 해본 것이 없다”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제대로 잘 싸워 목표를 이루는 것인데 그러자면 사회적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 교육 비전과 정책 수립을 위한 범사회적 논의 기구’를 만들자는 제안도 그런 취지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는 1983년 서울 화곡여중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89년 전교조 출범 당시 해직됐다가 복직했다. 전교조 여성국장, 부대변인 등을 거쳐 위원장 선거 직전 서울지부장을 지냈다. 새해부터 2년의 임기가 시작된다.

참교육을 끌어올리는 노력 부족했다

전교조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 참교육은 간데없고 이익단체화됐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89년 출범 당시 해직교사 1500명, 후원 교사까지 포함하면 1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조합원이 9만여 명으로 성장했다. 노조는 이념적 결속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대중조직 성격이 있어 참교육을 지향하는 정신이 엷어진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럼에도 이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충실히 했어야 하는데 교육부가 쏟아놓은 수많은 정책들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투쟁을 하다 보니 구호로는 참교육을 많이 주장했지만 실제 부족함이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처음처럼’, ‘아이들 속으로, 학부모 곁으로’를 강조했다. 전교조의 방향이 크게 선회하는 것인가.

=창립정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사회도, 아이들도, 학부모도 많이 달라졌다. 교사도 달라졌다. 현 시기 교육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방법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현 시기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무엇을 느끼고 바라는지, 학부모는 어떤 처지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먼저 다가가려 한다.

원론적인 것을 묻고 싶다. 교육이 뭔가.

=배우며 가르치며….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들과 희망을 노래하고 꿈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앞선 것도 있지만 정보화 시대에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먼저 산 사람이 윗세대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는 단계는 지났다.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뚜벅뚜벅 스스로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장 큰 미덕은 인간에 대한 사랑 아닐까. 아이들은 다 다르다.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믿음이 전달되고 아이 스스로 소중하다고 자각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진로를 찾아간다. 이상처럼 들리겠지만 현실이다.

학부모들의 요구는 이중적이다. 건전한 상식과 자존감을 가진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력 있는 수험생으로 만들어달라는 욕구도 있는 것 아닌가.

=학교에 있는 몇 시간 동안 인격부터 지식까지 교사에게 모든 것을 하라는 것은 과한 요구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부모 없이 밤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부모와 밥을 먹으면서 소통하는 아이들이 몇%나 될까. 숙제해라, 공부해라 같은 말 말고 소통을 위한 대화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교사와 학부모가, 국가와 사회가 아이들을 같이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여러 영역과 대화하고 합의 이끌어야

학교 교육에 대한 기대와 요구의 차이가 교원평가제 법제화를 둘러싼 견해차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 당선자는 교원평가제 법제화 반대를 위한 연가투쟁에는 비판적인 입장이 아니었나.

=교사들은 이미 근무평정이라는 방식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교사들이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평가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오해다. 교원평가제를 법제화한 나라는 거의 없다. 법제화하면 수업의 질이 나아질까? 교육의 과정을 보지 않고 교사를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 없이 학교, 교육, 수업을 평가한다면 결국 형식화되거나 그에 몰두해 교육과정이 왜곡될 수도 있다. 물론 교사들의 사기도 저하될 것이다.

전교조는 그동안 근무평정의 폐해를 주장해왔다. 평교사들이 교장·교감에게 줄을 서고 결국 학교 민주화를 가로막는다면서 폐지하거나 대폭 고쳐야 한다고 주장해오지 않았나. 교원 평가와 관련해 당선자의 대안은 뭔가.

=2월에 자발적인 실천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일 것이다. 한번 지켜봐라.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의견을 묻겠다. 점수를 매기는 방식보다 의견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다. 교원평가제와 상관없이 교사들의 변화 노력을 보여주겠다.

학부모들이 교원평가제 도입에 대해 왜 우호적인지 알고 있나.

=교사답지 않은 교사들 때문이라고 본다. 성추행, 금품 요구, 폭력에 관한 문제는 범죄적 성격이 짙다. 이는 교원평가와는 다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전교조가 주장해 시·도 교육청 단위로 교직복무심의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거기서 징계를 하면 된다.

전교조도 그 위원회에 들어가나.

=전임 집행부는 들어가지 않았다. 같은 교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나, 제대로 되겠냐는 우려가 작용한 것 같다.

정 당선자는 들어갈 생각인가.

=그 기구가 실제 어떻게 활동했는지, 실효성이 있었는지 일단 평가해본 뒤에 판단하겠다.

결국 자발적 실천운동과 위원회가 대안인가.

=교사로서 자긍심을 갖기 힘들고 아이들 앞에 당당하지 못할 때가 많다. 교사들 스스로 자기 혁신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현안에 대한 입장은 전임 집행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응방식의 차이 정도로 이해하면 되나.

=역으로 물어보자. 교원평가제를 법제화하면 현재 교육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 문제로 교육부와 전교조가 2년 동안 대립해왔다. 교육 양극화, 공교육 등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래서 21세기 교육 비전과 정책 수립을 위한 범사회적 논의 기구를 제안한다. 교육계, 시민단체, 학계, 종교계 등 여러 영역에 있는 분들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 달라진 사회에서 교육의 가치는 뭔지 큰 틀에서 합의가 필요하다. 교육의 철학과 내용, 방법을 마련하자. 평준화 문제도 포함해 교육에 대한 큰 그림을 같이 그려보자는 것이다. 특히 교육부의 성의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

온건파? 제대로 싸우자는 것

진보 진영 내에서도 평준화에 대해 다양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학력과 계층이 세습되고 있다. 계급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교육을 통한 변화 가능성이 평준화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특목고, 과학고·외고 등으로 많이 풀려 있는 상태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특목고를 준비하는 게 정상적인가.

온건파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제대로 잘 싸워서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20년 전처럼 정권과 싸워서 될 문제가 아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 우리 문제의식이 제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말하려는 것이 드러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지부장을 하면서 단식, 집회, 교섭 등 안 해본 게 없다. 이제는 다양한 창의적 전술이 필요하다. 1년 학비가 1천만원이나 하는 국제중학교를 막아냈다. 61개 시민사회단체와 같이 했다. 특히 언론과도 대화를 많이 했다. 고립을 넘어 자랑스런 전교조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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