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의 이례적 중복투자 인정 이끈 윤기돈 녹색연합 조직국장…“자동차 중심의 무조건 규격이 큰 고속도로·국도 정책에서 벗어나야”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기획예산처는 지난 3월5일 지난해 각 정부기관의 예산 낭비 사례를 발표했다. 1405억원의 예산 절감 내용 가운데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한 것은 도로 분야의 예산 낭비였다. 지난 2005년부터 도로 중복 투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온 녹색연합의 주장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이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해온 녹색연합 윤기돈(37) 조직국장을 만났다.
교통량 수요 예측 지나치게 부풀려져
기획예산처의 조처가 이례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 여주~양평 구간 37번 국도확장공사의 경우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중복 투자임을 인정했다. 계획 단계를 지나 토지를 매입하고 설계가 이뤄진 뒤에 이런 결정이 나서 건설이 중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례적이다. 고속도로와 국도의 무분별한 중복 투자 문제는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논의됐지만, 사회적 논의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37번 국도처럼 중복 투자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다른 사례가 있는가.
= 홍천과 양양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 계획은 지난해 4차선으로 확장된 44번, 46번 국도와 중복된다. 만약 고속도로가 이대로 건설된다면 지난해 개통된 미시령터널의 통행량은 급격히 줄어든다. 고속도로가 뚫리게 되면 같은 구간의 국도 사용량이 평균 30% 정도 줄어든다는 통계가 있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연결하는 이화령터널도 미시령터널과 비슷한 경우다. 이화령터널은 정부가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했다가 적자가 늘어나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린 뒤 교통량이 더 줄어들자 민간투자회사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704억원의 배상 판결이 난 경우다. 잘못된 교통 수요 예측의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기본설계 용역을 진행한 함양~울산간 고속도로(2009년 착공, 2019년 완공 예정) 역시 밀양에서 울산을 잇는 24번 국도와 중복 투자된 사례다. 2005년 녹색연합이 조사한 바로는 9조원 정도의 돈이 중복 투자되고 있다. 정부 통계를 봐도 이미 추진 중인 고속도로와 국도 사업의 남은 사업비가 65조원에 이른다.
이런 중복 투자가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 건설교통부의 교통정책이 근본 원인이다. 도로를 새로 건설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교통량 수요 예측인데 이것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 또 고속도로와 국도가 서로 보완해 건설되지 않고 따로따로 건설된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로의 관리·운영 주체가 각각 달라 통합적인 고려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자동차 중심의 도로 공급 위주 정책의 결과다.
건설교통부의 주장을 들어보면 한국은 도로 1km당 자동차 보유 대수가 151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도로 보급률이 세계 주요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얘기다. 자동차 보유 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나.
= 건설교통부가 내세우는 통계는 건설교통부의 입맛에 맞는 것들 위주다. 좁은 국토이다 보니 차량 밀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토 면적당 고속도로 연장 길이는 상위권이다. 일본·미국·영국보다 높다. OECD 국가 가운데 6위다. 고속도로와 국도의 개발은 선진국 수준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기 때문에 수도권의 차량 밀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지방에 내려갈 때 보면 막히는 구간은 수도권을 벗어날 때까지이고 다른 구간은 편하게 달릴 수 있다.
백두대간 주능선 지나는 도로만 77개
전국에서 도로를 무한정 늘린다고 해서 혼잡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도 교통 혼잡 비용의 증가가 문제되는 곳은 인천·광주·부산·대구 등 대도시 지역들이다. 어차피 이용자의 처지에서 보면 그것이 고속도로이든, 국도이든, 지방도로이든 간에 편하게 빨리 이동하는 게 중요하다. 통합적인 네트워크 개념의 도로 연결망을 구축해야 세금 낭비도 줄이고 생태계 단절도 막을 수 있다.
도로가 건설되면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백두대간 보전운동 과정에서 도로가 다른 어떤 국책사업 못지않게 환경을 파괴하는 요소라는 걸 알았다. 주요 생태축을 끊어놓는 것이 도로다. 현재 백두대간 주능선 고갯마루를 지나는 도로만 77개다. 여기에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정맥들을 지나는 도로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엄청나다. 생태축이 끊어지면 야생동물들의 서식처는 파괴되고 이동경로가 막힌다. 이른바 ‘로드 킬’이라고 불리는, 차에 치여 죽는 동물도 적지 않다. 새로운 도로 때문에 생겨난 쓰임새가 사라진 ‘폐도로’의 환경 폐해도 심각하다.
건설교통부도 도로 중복 투자 논란 때문에 도로 예산을 줄이고 완공 위주 공사에 집중 투자하는 등 기존 정책 방향을 일부 수정하고 있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지 않나.
= 기본적으로 자동차 중심의 도로 공급 정책을 바꾸지 않고서는 비슷한 문제들이 계속될 것이다. 건설교통부는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종으로 7개의 축, 횡으로 9개의 축으로 가르는 도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이른바 ‘세븐 바이 나인’이라는 것인데 이 계획의 상당 부분 도로는 이미 건설됐거나 건설 중이다. 무조건 규격이 큰 도로, 즉 고속도로나 4차선 국도를 건설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격이 다른 도로 사이의 연결망을 최적화하는 동시에 철도 등 다른 대중교통 수단과의 연계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길은 사람을 이어주지 못하더라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는 정부 정책의 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도로를 끊임없이 건설하는 지금의 추세가 바뀌기는 힘든 것 아닌가.
= 도로에 대한 재미난 연구가 있다. 1970년 미국에서 진행됐는데, 샌프란시스코의 도널드 애플야드라는 연구자는 도로에 다니는 차량 수와 그 도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인관계를 조사했다. 하루 2천여 대의 차가 다니는 지역에서는 한 사람에게 평균 3명의 친구가 있었고, 아는 사람은 6.3명이었던 데 비해 하루 1만6천여 대의 차가 다니는 지역에선 한 사람당 평균 0.9명의 친구와 3.1명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길이 오히려 사람 사이를 소원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확장 일변도의 도로정책은 인구 감소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2020년 이후에는 인구가 줄어든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는 도로의 통합적 건설과 관리 대책이 나와야 한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 자동차 내수시장이 현재의 124만여 대 규모에서 94만여 대로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도로와 관련한 국가경영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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