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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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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시간

등록 2007-02-16 00:00 수정 2020-05-03 04:24

▣ 권김현영 홍익대 강사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을 다룬 박진표 감독의 를 보았다. 이 영화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봉준호 감독의 이 실화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의 제목이 살인자의 시점이라면, 는 피해자의 분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을 보고 나서는 영화 안팎의 상황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를 보고 나서는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또 다른 전쟁

이 영화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대한 것이다. ‘그놈 목소리’를 44일간 들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고통이 지속되는 현실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인과관계의 인식소가 파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망각되고 잊혀진다고들 한다. 그러나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았을 때, 사건의 의미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을 때, 피해자의 고통이 애도되지 못했을 때, 시간은 사건 당시에 멈추고 고통은 끝나지 않게 된다. 트라우마는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경계가 없어진 1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시화되기 시작한 증상이다. 전쟁터와 일상, 병사와 민간인, 적과 나의 구분이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고통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존재할 수 없어진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 평화가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혼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임을 알게 된다. 도미야마 이치로는 책 에서 전후에도 지속되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가, 왜 내가 아니라 그들이 죽었어야 했나와 같은 의미는 있지만 소용없는 질문들을 끝없이 반복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음의 의미’를 묻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전쟁터에서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놈’은 공소시효가 소멸되면서 처벌의 압력에서 점차 자유로워진다. 피해자의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았지만, 가해자의 시간은 사법 시스템 안에서 합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15년간 과연 ‘그놈’은 고통스러웠을까? 공소시효가 만일 범인의 양심과 자책에 대한 신뢰 때문에 생긴 제도라면, 자백 여부와 죄책감으로 인한 가해자 마음의 상처에 따라 형을 감해주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공소시효 제도는 과거의 사건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사건에 더 많은 공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관료주의의 결과이다.

흐르지 않는 시간을 견디면서, 폭력의 상흔으로부터 거리두기까지의 시간을 겪어내야 하는 피해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어리거나, 한국말을 못하거나, 말해도 믿어주지 않거나, 성폭력의 경우처럼 신고하면 더 큰 피해가 오기 때문에 피해를 드러내기까지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법과 정의의 법칙과 고통의 윤리학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적 시간 안에 타인의 고통이 은폐돼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록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아도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계기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공소시효 폐지 운동이 가해자 처벌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해자 중심의 시간 개념이 아니라 고통받는 약자의 시간이 사법 공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 부정의를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노력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공소시효 폐지 운동이 가해자를 처벌하려는 정의의 욕망이 폭력에 경도되지 않으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피해에 공감하는 정치학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제시하는 법과 정의의 법칙이 고통의 윤리학으로 확산되어간다면, 아마 이 무기력과 우울도 다시 삶 속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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