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2006년 8월 나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애서바스칸 인디언 그위친 지파가 사는 마을인 아크틱빌리지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알래스카의 중소도시 페어뱅크스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넘게 날아가야 하는, 길이 없는, 툰드라의 고도다.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선 사전에 출입 허락을 받아야 했다. 마을 장로들과 시장이 허락해야만 기자의 출입도 가능하다. 일반인 출입통제 지역에 입경하기 하루 전날, 마을에서는 ‘방문 규약’을 알리는 네 쪽짜리 문서를 보내줬다.
“이 규약은 기자들의 행동 규범입니다. 처음 마을에 오자마자 기자는 마을사무소에 들러 시장과 마을평의회에 신고해야 합니다. 마을을 혼자 돌아다녀서는 안 됩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먼저 허락을 받으십시오. 주민들에게 전통 춤이나 사냥을 요구한다고 들어주지 않습니다. 주민들과 인터뷰할 때는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특히 마을 장로들과 인터뷰할 때 그들 말에 끼어들어선 안 됩니다. 그들의 경륜에 견줘 기술적인 질문은 피하십시오.”
구구절절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도배된 방문 규약을 읽고 난 약간 어지러웠다. 난 주민들을 ‘도우러’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구 147명밖에 되지 않는 이 마을은 10여 년을 알래스카 유전 개발에 반대해 투쟁하고 있었다. 나는 북극권 지방의 석유 채굴이 불러일으킨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관련성을 추적하고 있었고, 이 와중에 주민들의 싸움은 북돋아줄 무엇이었다.
마을 도착 뒤 나는 마을의 자급자족적 생활양식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했다. 마을 장로의 집 뒤뜰 오두막집에 여장을 푼 뒤, 장작을 패서 난로를 때고 미리 준비해간 식량으로 밥을 해먹었다. 방문 규약의 엄포와 달리 마을 사람들은 친절했다. 사람들은 선선하게 저녁 포틀래치에 오라고 권했으며 저녁 길엔 곰을 조심하라며 호루라기를 건네줬다. 방문 규약은 어느 순간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이 됐다. 취재는 어렵지 않게 진행됐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는 항상 공격성이 내재해 있다고 수전 손택이 에서 쓴 적이 있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이 쏘는 총은 동일시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취재 행위도 본질적으로 타자에 대한 식민성이 내재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 기자를 만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체계가 기자를 통해 오롯이 기사에 옮겨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기자의 머리에는 기자가 쓰고자 하는 ‘주제’의 비수가 숨겨져 있으며, 때로 그 비수는 취재원을 찌르기도 한다. 그리고 기사에는 기자가 해석한 세계만 펼쳐질 뿐이다.
부시 정권의 유전 개발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사실 미국의 수많은 미디어의 기자들이 이 작은 북극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들은 이 작은 자급자족 마을에서 호텔을 찾았고, 말 한마디를 따기 위해서 어눌한 영어를 구사하는 마을 장로에게 마이크를 들이댔으며, 고샅길을 뛰어다니는 꼬마들의 자연스러움을 카메라로 제압했다. 군단처럼 상륙한 기자들은 커뮤니티의 수용 한도를 넘어섰고, 일부 친자본적인 언론은 나중에야 생각지 못한 비수를 찔렀을 것이다.
언론에 시달리고 배신당한 주민들은 그리하여 방문 규약이라 불리는 ‘취재보도 준칙’을 반포한 것이었다. 그들의 부탁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이 땅에서 매우 검소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활하는 마을에 당신들을 초대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살림, 생활양식을 존중해주길 바랍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구속 만기 돼도 집에 안 갈 테니”…윤석열, 최후진술서 1시간 읍소

디올백·금거북이·목걸이...검찰 수사 뒤집고 김건희 ‘매관매직’ 모두 기소

청와대 복귀 이 대통령…두 달간 한남동 출퇴근 ‘교통·경호’ 과제

“비행기서 빈대에 물렸다” 따지니 승무원 “쉿”…델타·KLM에 20만불 소송

특검, 김건희에 ‘로저비비에 선물’ 김기현 부부 동시 기소

나경원 “통일교 특검 빨리 했으면…문제 있다면 100번도 털지 않았을까”

박주민, 김병기 논란에 “나라면 당에 부담 안 주는 방향 고민할 것”

김건희에 ‘로저비비에 가방 전달’ 김기현 부인 특검 재출석…곧 기소

전북대, ‘학폭 이력’ 지원자 18명 전원 수시모집 불합격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5/53_17666328279211_20251225500964.jpg)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